중국의 고구려사 찬탈에 대하여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찬탈한다고 하여 난리가 났다.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 특집기사를 만들고 시민단체들은 항의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민족의 역사를 잃어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분개하고 항의한들 중국이 자기네 땅에 있는 역사 유적을 가지고 자기네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겠다는데 막을 도리는 없을 것 같다. 더구나 고대로 올라갈수록 나라와 민족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을 터.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이 일을 계기로 우리의 북방 고대사에 대한 연구가 활기를 띠고 다시 한번 ‘방어적인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릴 거란 점이다.

방어적인 민족주의라고 했다. 이것은 공세적인 중화 민족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시절에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방어적 민족주의를 겪은 바가 있다. 그러한 민족정신이 해방 후 새로운 나라의 건국이념이 된 것은 식민지를 경험한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의 공통된 사항이다. 민족주의가 한 나라의 부흥과 발전에 긍정적인 몫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한국의 박정희식 경제개발은 민족주의의 전형적인 발현 양식이다. 정치 이념적으로 볼 때 박정희가 주도한 경제개발의 최대의 공적()은 방어적 민족주의를 공세적 민족주의로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이전의 그것이 총과 칼로써 행해졌다면 1970년대 이후의 그것은 무역전쟁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중국이 확실히 자본주의 노선으로 돌아선 90년대 이후 한국의 공세적 민족주의는 조선족이 밀집해 있는 중국 동북지역을 전략적으로 파고들었고 그렇지 않아도 북한과의 혈맹관계로 인해 어정쩡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중국은 더는 방관할 수 없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 중국 동북지역에는 전모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한국인 선교사와 무역상들이 나가 있다. 게다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노동이민이 남한과 중국 동북지역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자본과 노동이 자유로이 오가는 시대에 이러한 이동을 무단으로 막을 수는 없다. 중국 정부가 취한 조처는 결국 공격이 최선의 방어, 곧, 공세적 민족주의에는 공세적 민족주의로 방어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정부의 소위 ‘동북공정’에는 일면 공세적이면서, 일면 방어적인 측면이 있다.

이웃나라 일본이 숱하게 자행했듯이 중국의 역사 왜곡은 철저히 정치적인 행위이지 역사적 양심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저들의 행위에 대응하여 우리 국민들 사이에 민족주의적 정서를 불러일으켜 정치 공세를 펴는 것은 사태 해결에 결코 도움이 안 된다. 70년 전 만주에 괴뢰국을 세운 뒤 중국에 진출했던 일본의 경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중국을 상대로 똑같은 지역에 한민족의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동북아의 평화이지 어느 한 민족의 패권주의가 아니다. 저들의 행위에 대한 응징은 학자들의 정직한 연구 발표와 정부 차원의 정중한 항의로 충분하다. 대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동포인 ‘조선족’을 포함하여 그 땅에 살고 있는 인민들의 행복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지금 연변의 조선족 밀집지역은 한국으로 돈 벌러 나간 사람들 때문에 마을이 텅 비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고 한다. 자국의 경제 성장을 위하여 값싼 노동력 수입에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자기가 사는 곳에서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는 것이므로 한·중 양국이 협력하여 체계적으로 해나간다면 민족주의적 대결을 피해 양국 모두의 이익이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동북아의 평화에도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황대권 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

(한겨레신문 20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