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을 넘어 공존으로-4(끝)>`민족 중심` 벗어나 `동북아史` 함께 고민

(::한·중·일 '역사주권 논쟁' 어떻게 대응::)

노먼 데이비스(Norman Davies)는 영국의 역사가이다. 폴란드 역사를 전공한 그가 몇 년 전에 사뭇 논쟁적인 영국사 개설서를 썼다. 그런데 ‘섬들의 역사’(The Isles: A History·1999)라고 제목을 붙인 이 영국사 개설서에는 ‘영국’(Britain)이 없다.

‘영국’이라는 단어가 1707년에야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으니, 그 이전의 역사를 ‘영국사’라 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밑에는 ‘잉글랜드’를 곧 ‘영국’과 등치시켜 온 잉글랜드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역사현실과 역사서술 모두에서소외되어 온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아일랜드의 역사적 시민권을 복권시키기 위해, 그는 ‘영국’을 버린 것이다.

이 독특한 영국사의 출발점은 웨섹스의 체다 계곡에서 발견된 중석기 시대 한 선사인의 유골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고대인의 유골에 대한 DNA 검사가 보여주는 것은, 그가 훗날 잉글랜드라 불리는 한 지역에서 태어나고 죽었지만 ‘잉글랜드인’(English)은 분명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이 없는 이 영국사는 자기네 조상이 아닌 비잉글랜드인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영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이 책을 ‘위험한 책’이라고 낙인찍었지만, 잉글랜드의 고유성이라는 신화를 부수고 잡종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그의 독특한 문제의식은 이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진입시켰다. 런던에서만도 이미 300종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는 현재의 다민족적 상황에서 영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물음과 성찰이 독자들을 움직인 것이다.

정치적으로 그것은 제국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영국’을 폐지하고,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웨일스, 잉글랜드라는 4개의 서로 다른 자율적 정치체가 유럽연합으로 통합되는 21세기를 향한 정치적 구상을 담고 있다. 또 제국주의 국가권력이 만들어낸 ‘국사’(national history)의 패러다임을 그 근저에서부터 뒤흔든 것이기도 하다.

영국을 해체한 이 영국사 개설서가 나온 1999년 이웃 일본에서는‘국민의 역사’가 막 간행되어 베스트셀러로 만들어졌다. 역사수정주의와 그것이 함축하는 민족주의가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구자, 제국의 과거를 미화하는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에 대한 민족주의적 공분으로 중국과 한국이 들끓었다.

먼 옛날 한반도에 살았지만 우리네 조상이 아닌 비한국인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한국’이 없는 한국사, 혹은 같은 유형의 일본사, 중국사 개설서를 이 상황에서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통합 유럽의 공통 역사교과서와 같은 동아시아 공통의 역사교과서는 더 요원하다.

일본의 ‘새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동아시아 4국의 논쟁이나 고구려사의 역사적 주권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설전, 또 과거 ‘임나일본부’ 설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 역사학계의 팽팽한 대립은 이미 전문 역사가들의 논쟁을 넘어서 국가권력과 시민사회가 개입된 역사전쟁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자기 민족을 인식과 실천의 주체로 놓고 팽팽하게 맞선 이 역사전쟁에서 ‘국사’를 해체하여 자민족 중심주의를 상대화시키고 공통의 동아시아 역사상을 수립하자는 주장은 설 땅이 없다. 국사 해체는 적의 공격적민족주의 앞에서 우리 민족의 방어 논리를 무장 해제할 뿐이라는감정적 반발이 역사적·비판적 성찰을 압도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지형에서 민족주의가 작동해온 방식을 이해하면,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역사의식이 왜 ‘국사’의 틀에 갇혀 있는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최근의 역사전쟁에서 보듯이,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서로 충돌하고 상대방을 배제하는 적대적인 관계이지만 동시에 공범관계인 것이다.

이 ‘적대적 공범관계’ 속에서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고 타자화시키면서도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살찌우고 강화시켰던 것이다. 민족주의를 국민 통합과 동원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는 동아시아의 국가권력은 표면적으로는 적이지만 실제로는 내연관계를 맺고 있는 ‘내연의 적’인 것이다.

이들은 동아시아의 민중들 사이에 민족적 냉전체제를 조성하고 끊임없이 그것을 재생산함으로써 권력의 헤게모니를 강화해온 것이다. 시민사회의 역사의식은 이들 국가권력이 만들어 놓은 민족주의의 그물망에 포섭됨으로써, 권력이 작동할 수 있는 풍부한 토양을 제공해 왔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운영하는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반대하는 웹 사이트에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이 대거 들어가 일본의 민족주의를 욕하고 한국의 민족주의를 찬양하는 글들을 남겨 놓는다. 그러면 다시 일본의 민족주의자들이 이 사이트를 방문해서, 한국 민족주의 앞에서 일본의 민족주의를 무장해제시키는 민족배반자라는 욕설을 남긴다. 문제는 이런 일이 거듭될수록 일본이나 한국 모두에서 권력담론으로서의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동아시아의 연대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이때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욕하고 비방하면서도 서로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사실상의공범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일본의 수정주의 우익 역사가들에게 한국의 국사 교과서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한 산케이(山經) 신문의 한 사설은 이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두 민족주의 교과서는 적대적 해석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인식의 틀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역사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사유의틀을 심어주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문제인 것이다.

동아시아 시민사회의 역사의식을 자민족 중심주의의 ‘국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성찰적 동아시아 역사상으로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동북아 공동체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이라고 믿는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국가가 주도하는 권력의 담합구조가 아니라 밑으로부터의 자발적이고 비판적인 민중연대를 향한 문화적 전제인 것이다. ( 임지현: 한양대 교수)

(문화일보 20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