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족주의의 충돌

최근 미국의 주요 언론은 한국과 관계된 새로운 면을 등장시키고 있다. 이제까지 한반도에 관한 미국언론의 초점은 북핵 문제였다. 물론 지금도 6자 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가지는 한반도의 최대의 관심은 당연히 북핵 문제이다.

그러나 최근 새롭게 등장하는 문제는 중국과 일본을 둘러싸고 한국이 씨름하고 있는 한국의 역사와 영토에 관한 문제이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기들의 변방역사로 중국역사 가운데 포함시키려는 작금의 태도와 일본이 독도를 자기영토로 주장하는 문제를 두고 한국은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할지 고민이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러한 문제는 한국이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의 문제이므로 미국의 관심사가 아닌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미국언론들은 이 문제를 북한측의 입장과 연결시키면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즉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한다든지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러한 이웃나라들의 의도에 대해서는 남한과 북한이 공동작전으로 나오고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북한은 이미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에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했는데 중국은 중국대로 고구려의 유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세계문화 유산으로 같은 기관에 신청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남한은 반북(反北)성향을 가진 보수적인 신문까지도 합세해서 중국의 시도를 저지시키고 북한의 신청을 적극찬성, 서명운동에 나서고 있다는 보도다.

한국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남한이든지 북한이든지 우리가 한 역사를 이루어온 한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당연한 일들을 미국이 유심히 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의 이러한 민족주의적인 움직임이 한국인이 미국에 대해서 가지는 반미정서와 어떤 함수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측정하고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남한사람들이 북한과 미국을 비교해서 어느 나라가 더 한국에 위험한 나라인가 라는 질문에 37%가 미국, 34%가 북한이라고 대답했다는 사실과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을 전격적으로 경질했다는 사실을 겸해서 보도했다.

이러한 보도는 한국의 반미정서와 동시에 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주체적인 민족주의 노선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나아가서 이러한 주체성과 민족주의적 노선이 북한과 남한을 묶어주는 공감대의 역할을 하고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작년만 해도 동북아시아 시대를 주창하면서 이웃나라인 중국 일본 러시아 공동유대를 강조했었다. 그러나 일년도 못 가서 한국은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다시금 한국의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조할 수밖에 없는 곤경에 빠지고 말았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급부상하면서 중국인들의 자긍심을 더욱 추켜세우는 중국적 민족주의가 휩쓸고 있다.

과거 몇 년 전부터 중국학자들이 즐겨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문화적 중국(cultural China)’이라는 말이다. 지역적 영토에 한정된 중국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역은 문화적인 의미에서 중국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동아시아 전체를 중국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이라 볼 때 ‘문화적 중국’이라는 말이 심상히 들리지 않는다.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을 넘어서서 세계각지에 흩어진 ‘중국인의 분산(Chinese diaspora)’에 관한 연구도 활발하다. 어떻게 보면 이번 고구려역사나 유적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갈등은 새롭게 등장하는 중국의 민족주의와 한국민족주의의 갈등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민족주의는 미국은 물론 이웃인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로부터도 고립과 갈등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 민족주의가 가져 올 수 있는 위험성이다. 때에 따라서는 한 국가의 독립과 민족주체성을 위해서는 고립과 갈등의 대가를 지불하기도 해야 한다.

20세기의 민족주의는 거의 고립과 갈등을 동반하는 민족주의였었다. 그러나 지구촌을 형성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는 민족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해석을 해야한다. 국가간의 상호의존과 민족의 주체성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이자 택일의 논리를 초월할 수 있는 새로운 의미의 민족주의가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노영찬 / 美 조지메이슨대 교수)

(문화일보 20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