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공동체’는 요원한가

올들어 한국 중국 일본 3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동북아의 세 이웃나라 사이에는 마치 걸리면 바로 터지는 ‘인계철선’(trip wire)이 놓여 있는 것 같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섬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에 물대포가 등장했다는 소식은 보름 전 알려진 터지만 지난 주말 미국 CNN방송이 중국에서 전한 뉴스 화면을 보면 현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섬 상륙을 시도하다 일본 순시선의 물대포를 맞고 되돌아 온 ‘댜오위다오 수호연합회’ 회원들은 중국 주민들로 부터 영웅대접을 받는 듯했다. 이 민간단체 회원은 TV 인터뷰에서 “반드시 상륙해서 땅을 되찾겠다”는 각오를 분명히 했다. 일본 순시선의 고압 수포분사기 발사로 회원 2명이 ‘피를 흘리는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이들의 전의를 더욱 북돋우는 것 같았다.

이 화면은 10여 년전 우리나라의 베스트 셀러였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연상시켰다. 21세기 초 한·일간의 전쟁을 가상한 이 소설에서 일본의 전쟁도발 계기는 바로 일본 우익의 독도 상륙과 할복이었다. 올 들어 우리 정부의 독도 우표발행을 두고 고이즈미 총리가 전례 없이 직접 나서서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주장한 것은 이 문제의 민감성을 보여주었다.

지난주 서울에서는 한 정신병자가 “일본인 남자들로부터 모욕을 당한 분풀이”라며 일본 초등학생을 손도끼로 해치려 했다. 다행히 피해 학생의 생명은 문제가 없어 일본측의 격렬한 반응은 없었지만 자칫 ‘정신병자’ 한 사람이 한·일관계를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한·일, 중·일 사이의 긴장과 갈등의 원인은 20세기 초반 일본의 한국 강점과 중국 침략의 역사 때문이다. 영유권 문제야 경제적 이해 때문에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분쟁이지만 과거사의 상흔이 깊은 동북아 지역내에서 분쟁의 인화력은 엄청나다.
동북아의 세 이웃국가 사이에 파인 깊은 감정의 골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중·일 3국의 경제적 의존도는 나날이 커지고 있다. 당장 일본은 중국 수출확대 덕분에 엔고로 인한 미국시장 수출의 부진을 메우고 오히려 엄청난 흑자를 누리고 있다. 3국간의 역내수출 비중도 해마다 높아져 지난해는 3국 전체 수출액의 22.2%에 달했다.

경제적 이득으로만 보면 유럽연합, 북미자유무역협정 같은 지역내 경제협력체로 나아가야 할 3국간의 관계지만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예컨대 중·일간의 갈등과 반목으로 ‘중국의 베이징~상하이간 고속철도 사업’에서 일본은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군의 대학살이 있었던 난징을 지나는 고속철에 일본을 참여시켜서는 안된다는 앙금에다 영유권 분쟁 등이 겹친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고이즈미 총리는 연초에 태평양 전쟁 전범의 위패도 함께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방문해 한·중 양국 정부와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일본 지도자들은 이웃 국가들의 상흔 보다는 자국내의 우경화 분위기에 더욱 편승하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도 경제 성장및 사회주의 해체로 인한 문제, 그리고 소수민족의 이탈을 피하기 위해 ‘대중화주의(大中華主義)’ 기치를 높이 세울 태세다. 최근에는 중국학자들이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고 해 한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1960년대초 프랑스와 독일의 지도자들은 수백년간의 전쟁과 반목을 종식시키고 유럽연합의 기초를 쌓았다. 그런 일이 동북아에서는 21세기 들어서도 불가능한 것일까.

(문화일보 20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