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고대史전쟁] 동북공정 변천과정

‘동북공정’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는 지금까지 3단계로 변해 왔다. 195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학계는 중국사의 범위를확 대해야 된다는 이론적 검토를 진행했으나, 고구려사에 대한 인식은 각종 교과서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한국사의 일부로 서술하여 표면적으로는 전통적인 견해와 별 다른점이 나타나지 않았다.

80년대부터 쑨찐지(孫進己) 등 일부 학자들이 종래의 연구를 비판하면서고구려사를 중국의 지방사로 봐야 한다는 설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때 강맹산을 비롯한 조선족 학자들은 ‘일사양용(一史兩用)’이라는 구호 아래 만주 지역에 도읍이 있었던 시기의 고구려는 중국사로,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는 한국사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절충적 시각이 중국학계에서도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더 체계적으로 이념화하여 고구려사를 전면적으로 중국사의 일부로 보려는 학자들의 견해가 비등하기 시작했다. 특히 93년 남북한과 중국학자들이 참여해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에서 열린 ‘고구려문화 국제학술토론회’에서 북한의 박시형과 쑨찐지의 논전을 계기로 중국학계의 고구려사 편입설이 더 힘을 얻게됐다.

(한국일보 20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