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백제 칠지도’ 전시장에 가다

하사한거냐 바친거냐 논란중인 칼이 꼿꼿이

일곱 가지 달린 백제의 칼은 전시장에서 왕의 자태처럼 빛났다. 진열창 안 특수 나무틀 홈에 끼워진 채 꼿꼿이 선 칼 앞에서 관객들은 경배하듯 고개 숙인 채 눈을 크게 떴다. 뒷쪽엔 실물칼 본뜬 모조품과 옛 나무틀을 넣은 별도 진열창 3개가 시종처럼 도열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일본 고대사의 고향인 중부 긴키(간사이)지방 나라시에는 오랫만에 전시된 백제칼 ‘칠지도(七支刀)’ 덕분에 한국 관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지난달 4일부터 와카쿠사산 기슭 국립나라박물관에서 특별전 ‘칠지도와 이소노카미 신궁의 신보(神寶)’전(8일까지, www.narahaku.go.jp)이 바로 그 전시다. 2000년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선보인 뒤 4년만의 공개다. 박물관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칠지도를 굳이 보러 온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야마토시대의 신들과 미술’이란 부제처럼 원래 전시얼개는 5세기 야마토 정권시대 세워진 일본 최고의 신사 이소노카미의 일급 보물들을 통해 불교 전래 전 신도신앙의 원형을 보여주려는 것이 뼈대다. 칠지도 외에 한국산 철로 만든 제례용

방패와 신사 본전 주변에서 발굴된 구슬, 철기, 거울 등의 제기, 에도시대 제례행렬도 등 ‘신도미술품’들이 이런 의도를 보여준다.

핵심유물인 칠지도는 길이 74.8㎝로 딸림 날이 각 3개씩 본체 양쪽으로 엇갈리게 솟은 독특한 칼이다. 본체 표면 앞 뒤로 홈을 판 뒤 금을 입혀 기록한 60여 자의 한자 명문에는 백제 왕세자가 왜왕에게 안녕을 빌며 선물했다는 전래경위가 나온다. 그러나 남북한·일본 학계는 칼의 명문에 나오는 연호(3·4·5세기설이 엇갈린다), 전래경위 따위의 세부해석을 놓고 100년 이상 지난한 입씨름을 벌여왔다. 윗 나라로 보고 바친 것(헌상)인지 아랫나라로 보고 내린 것(하사)인지의 해석여하에 따라 왜가 4~6세기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일본쪽 임나일본부설, 백제가 일본을 제후국으로 삼았다는 북한쪽 분국설 등의 근거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등 고대사 논란이 불거진 상황도 관심을 부채질했다. 실제로 몰려든 한국관객들은 전시 본래 의도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28일 전시장에서 만난 경주 박물관 대학 수강생 80여 명도 대부분 들머리 다음 칸에 설치된 칠지도 진열창과 명문 사진패널 앞에 머물러 있었다. “백제 건데 일본이 뺏은 기제” “서로 자기네 역사라고 싸운다카데” 등의 잡담이 들렸다.

일본관객이나 박물관쪽 반응은 조심스럽거나 무덤덤했다. 전시 소개자료나 박물관 사람들의 설명 등에서는 칠지도를 신도신앙의 증거물 혹은 교류사의 초창기 기록이란 중립적 해석쪽으로 부각시키려는 기색이 뚜렷하다. 가지타니 박물관 학예과장은 “슬픈 역사도 있으나 한·일간에는 선린교류 기간이 더 길었다”며 “칠지도 또한 선린 외교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한겨레신문 20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