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국, 중국의 또 다른 힘

최근 한 한국인 화가는 파리의 국제 예술인촌 ‘시테 엥테르나시오날 데 자르’에서 대관 신청을 하려다 깜짝 놀랐다고 했다. 프랑스어에 대한 자부심으로 영어를 병기하기도 꺼리는 프랑스인들이 대관 신청서에 중국어를 나란히 써놓은 것. 예술의 도시 파리로 몰려드는 중국인 예술가들을 위한 친절한 배려였다.

얼마 전 국립죄드폼미술관에서 열린 중국 출신의 현대미술작가 자오 우키 전시회도 치솟는 ‘중국 프리미엄’ 덕에 더더욱 성황을 이뤘다는 후문이다. 한 미술학도는 “문화 강대국 프랑스에서는 아시아 문화 하면 곧 중국을 떠올린다”며 “한국에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중국의 또 다른 힘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바라보는 중국은 저렴한 노동력을 무기로 국내 제조업을 무너뜨려가는 ‘값싼 중국’과 고구려사 논쟁에서 불거진 역사 왜곡의 부정적 모습이 대부분이다. 프랑스 내에서도 불법 체류 중국인들로 인해 부정적 이미지는 여전히 많다.

하지만 파리에는 중국의 또 다른 얼굴이 있다. 올해는 프랑스 정부가 중국 정부와 손잡고 정한 ‘중국의 해’. 파리 시내 곳곳에서는 물론,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중국 관련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다. 중국인 예술가들도 나날이 신장하는 국력을 업고 주가를 드높인다.

최근 중국이 5~10년 내에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 될 것이라는 보고서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장차 ‘경제 대국’의 힘에 ‘문화 대국’ 이미지까지 합해진다면 ‘값비싼 중국’의 시너지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문화의 중심지 파리에서 중국이 활발한 문화활동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가는 모습을 보며 위기감과 착잡함이 앞선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일보 20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