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中 결전을 각오해야 자유통일 가능

서기 전 2세기 漢의 武帝는 거의 全생애를 북방기마민족국가 匈奴와의 싸움에 보냈다. 그 전의 漢은 흉노 기마군단에 눌려 매년 皇族의 여자와 물품을 바치는 朝貢 관계를 맺어 속국처럼 굴종했다. 漢 무제는 흉노와 싸우는 과정에서 서기 108년 衛滿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에 漢四郡이란 식민지를 설치했다.
 
일본의 교토대학 문학부 교수 스기야마 마사아키(衫山正明)는 「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란 책에서 당시의 조선은 흉노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을 것이고 漢 무제는 흉노를 공격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한사군을 설치했을 것이라고 썼다.
 
중국, 특히 북중국에 漢이나 흉노 같은 강대한 제국이 들어서면 한반도는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 침략을 받든지 속국화되었다.
 
5胡16國 시대의 대동란을 마감하고 589년에 중국을 통일한 隋는 고구려를 쳤다가 망했고, 이를 이은 唐도 고구려를 쳤다가 실패하자 신라와 동맹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신라마저 먹으려고 했다. 신라는 이에 저항하여 對唐결전을 선택, 唐을 한반도에서 몰아냈다. 분열기의 중국은 한반도에 개입할 여력이 없으나 통일기의 중국은 한반도 부근에 강력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을 두 눈 뜨고는 못 보는 전통이 생긴 것이다.
 
10, 12, 13세기 遼와 金과 元이 북중국에 등장했다. 元은 南宋을 멸망시킨 뒤 중국 전체를 통일했다. 신라사람이 세운 金은 형제국인 고려를 치지 않았으나 거란족의 遼와 몽골족의 元은 고려를 공격하였다. 특히 元은 40년간 고려를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낸 뒤에는 약 100년간 고려를 속국으로 지배했다.
 
조선은 개국하자 중국을 새로 지배하게 된 明에 대한 사대주의적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明의 개입을 차단하긴 했으나 너무나 종속적인 국가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과 국가 자존심을 상실해 갔다. 사대주의 정책의 비싼 代價는 尙武정신과 自主정신의 실종으로 나타났다. 사대주의로 해서 국방마저 明에 의존하는 바람에 조선은 강력한 상비군을 만들 필요가 없어 편해진 것 같았으나 이 정신적 해이로 해서 지배층의 자주 국방 의지가 약해졌다.
 
17세기 淸은 만주를 석권하고 중원으로 진출하여 明의 중국을 정복해 가는 과정에서 두 차례 조선을 침공했다. 정묘호란, 병자호란이 그것이다.
 
1950년 10월 중공은 대한민국에 의한 남북 통일을 앞둔 상황에서 大兵을 파견하여 통일을 저지하였다. 그 뒤 중국은 북한편에 서서 金正日 정권을 연명시킴으로써 지금까지 한반도 통일을 저지하고 있다.
 
위의 역사적 사례들이 보여주는 하나의 원리는 앞으로 남북통일을 가장 크게 방해할 세력은 중국이란 점이다. 대한민국이 對唐 결전과 비슷한 성격의 對中 결전을 각오하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통일을 하기 어렵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이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이 아닐까. 즉, 중국의 통일정권은 한반도에서 강력한 통일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남북통일을 하기 위해선 미국과 동맹하고 일본과 친하게 지내야 할 당위성이 여기서 제기된다. 反美親中의 경향이 한국을 지배하게 되면 한반도의 운명은 중국 손에 좌우되어 분단이 지속되고 통일되더라도 조선처럼 주체성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
 
요사이 중국이 고구려史를 중국의 地方史 정도로 격하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金正日 정권이 붕괴되면 중국은 親中 정권을 세워 분단을 지속시키려 들지 모른다. 중국의 국력 대팽창을 경계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월간조선 / 조갑제 편집장 2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