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발해 1300호 대장에게

철수형. 형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6년이 흘러갑니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믿지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손을 맞잡았고,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했답니다. 형이 뗏목에 새기셨던 그 치우천왕 그림이 온 나라를 뒤덮으며 온 국민이 붉은악마가 되어 ‘대~한민국’을 합창하던 참으로 신명나는 월드컵이었답니다. 하지만 궂은 일도 많았답니다. 여전히 정치인들은 검은 돈 때문에 줄줄이 쇠고랑을 차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형이 살아생전 그렇게 사랑했던 독도가 일본영토라고 일본 총리가 망언하고, 더더구나 중국은 이른바 동북공정이라 하여 만주와 연해주를 아울렀던 고구려, 발해까지도 중국 자신의 역사로 만들려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역사왜곡을 저지르려 하고 있답니다.

철수형. 이제야 왜 살을 에는 듯한 시베리아 추위속에서 뗏목을 띄울 수밖에 없었는지를 어슴푸레 깨닫게 됩니다. 지난 1997년 12월31일, 형은 참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경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집을 정리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제작한 뗏목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항시킨 일이었지요. 그 해는 해동성국으로 이름을 떨쳤던 발해가 건국한 지 1,300년이 되던 해였지요.

-6년전 故人의 뗏목 대장정-

그래서 뗏목 이름도 발해1300호였다죠. 분명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건만 이웃 중국과 러시아에서는 그들 나라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여왔다는 것은 형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발해의 옛 수도에 건립된 상경유지박물관의 안내판에 발해사가 당 왕조에 예속된 속말말갈 주체의 지방 정권이라고 소개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모두들 뒷짐지고 바라만 볼 때, 형은 시베리아 추위에 뗏목을 띄우셨던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왜 겨울 추위에 뗏목을 띄웠느냐, 혹은 무모한 항해였다고들 합니다. 발해가 사신 왕래만 34차에 걸쳐 동해를 건너 일본과 교류하는 동안 대부분 겨울철에 항해에 나섰다는 것과 형이 12월에 옛 발해의 영토에서 뗏목을 출항시킨 것은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니었지요. 그래요. 형은 단순한 발해사 복원이 아닌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재현을 통해 한반도 중심의 역사에서 만주와 연해주로 우리 역사의 지평을 넓혔던 발해의 융성한 역사를 복원하려 하셨지요.

또한 형은 기록을 남기는 일에 참 충실하셨지요. 뗏목이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와 강풍 속에서 일본 도고섬 앞에서 좌초되어 형을 비롯한 4명의 대원이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였을 때 바다 속에서 한 권의 두툼한 항해일지가 발견되었지요. 거기에는 25일간의 항해와 대원들의 고민이 녹녹히 녹아있더군요. 발해1300호 최후의 날인 1월23일 일기에 “나라에 짐이 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 더욱이 오늘 한·일어업협정이 일방적으로 파기되었다는데 그들의 속셈이 드러났다고 보아진다. 무엇보다도 내가 의연해지고 싶다. 미래와 현재의 공존과 조화. 바다를 통한 인류의 평화 모색. 청년에게 꿈과 지혜를 주고 싶다. 탐험정신. 발해의 정신”이라고 쓰셨더군요. 도착하면 소주 한잔 기울이자던 형의 소망은 오간 데 없고 항해일지만이 덩그러니 돌아왔습니다. 형은 발해만이 아니라 살아생전 일본이 독도에 대해 망언을 할 때마다 한국외대 후배들과 전국 곳곳에서 일본 스스로 독도가 한국영토라고 밝힌 지도들을 내보이며 일본의 망언을 항의했고, 울릉도~독도간 뗏목탐사를 통해 독도의 고대역사를 실증적으로 복원하려 애쓰셨지요. 형의 영결식날 달려와 “발해인들이 연해주에서 한반도 남부와 일본을 왕래했음을 증명해 해양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면서 형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주며 경외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러시아 극동대학교 관계자들의 얘기는 동북아의 역사왜곡에 어떻게 대처해야함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였지요.

-中·日 억지 대응 본보기-

철수형. 형을 잊지 않겠다던 사람들이 6주기를 맞아 오늘 발해1300호 추모대제를 넉넉히 준비했습니다. 월드컵 4강의 감동이 생생히 녹아있는 역사의 현장 광화문 거리에서, 온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주었던 그 역사의 광장에서 다시금 민족사의 감동을 재현한답니다. 그래요. 이 땅은 형의 소망처럼 청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김윤배/발해1300호 기념사업회 운영위원〉

(경향신문 2004-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