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중국 실리외교

중국은 실익을 중시하는 외교로 신흥 강대국인 동시에 세계의 제조공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결과 중국은 미국과 함께 한반도의 장래를 좌우하게 되었다.

냉전이 종식된 뒤 중국은 '자주'와 '반패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1978년에 덩샤오핑(鄧小平)이 개시한 경제개혁과 개방정책을 성취하기 위해 실익중시 외교를 해왔다. 중국은 대만을 방위하고 있는 미국을 '패권국'이라 지칭했지만 실제행동은 유일 초강국인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최우선시해 왔다. 99년 나토군이 주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을 오폭했을 때와 2001년 미 공군정찰기와 중국 전투기가 공중 충돌했을 때 중국 내에서는 거센 반미운동이 일어났지만 중국정부는 그것이 대미관계에 미치는 악영향을 차단했던 것이다. 2001년에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미국과의 협상에 전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개시했을 때도 중국은 반대했지만 프랑스가 시도했던 반미연대 결성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후진타오(胡錦濤)주석은 이번 주 중국.프랑스 국교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파리를 직접 방문, 프랑스와 9건의 사업협정을 체결했다. 이처럼 중국은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세력균형 정책을 구사하면서 테러와 대량파괴무기 방지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조하지만 대만.티베트.인권에 대해서는 대결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중국은 최대 수출시장으로서의 미국을 잘 활용하고 있다. 대미교역에서 중국은 지난해 약 1천3백억달러의 흑자를 내 9.1%의 세계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편 미국과 무역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중국은 미국정부의 공채를 구입하고 보잉사에서 많은 비행기를 구매하며 인민폐(중국화폐)의 환율에 대해서도 공동 연구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미국의회와 세계자본시장에서 중국에 대한 신인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중국 경제가 신속하게 세계화의 흐름에 통합하자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도 중국의 장래가 참가자들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고 한다. 현재 매년 5백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중국은 2041년에는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미국투자회사 골드먼 삭스는 예측하고 있다. 2002년부터 중국은 일본.한국.대만.홍콩이 흑자를 내고 있는 최대 수출시장이 됐으니 확실히 동북아시아의 경제 중심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현실은 한국이 동북아 중심국이라고 말하고 있는 국내 시각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실제로 중국은 아직도 한반도를 하나의 '변방'으로 보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중국 사학자들이 고구려를 중국의 옛 영토라고 주장한 것이 그 좋은 증거다. 지금도 베이징(北京)과 타이베이(臺北)가 서울을 '한성(漢城)'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예다. 인구 13억을 가진 중국의 31개 성(省) 단위 중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산둥(山東)성의 인구가 9천만명이다. 이 실로 방대한 중국의 위상은 우리에게는 엄청난 도전인 동시에 많은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케 하는 일도 중국의 적극적인 개입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미국과 북한 간에 중재자 역할을 담당해 6자회담을 성사키고 있다. 사실 중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한다. '치순(齒脣)관계'에 있는 북한에서 불안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중국 자체의 안보와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것이므로 중국은 이를 피하려 하며 가능한 한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중국과 일본 간에 세력다툼이 재연되고 있는 데 우리는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동남아에서 중국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2010년까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기로 합의하자 일본은 더 포괄적인 경제협력을 제안했고 지난해 12월 도쿄(東京)에 유치한 아세안정상회담에서 30억달러의 원조를 제시했다. 이와 같이 우리 주변에서 일.중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국가발전과 국민생활에 실익을 주는 외교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安秉俊 일본 정책연구대학원 초빙교수)

(중앙일보 2004-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