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연구했다간 밥굶기 십상"

"고구려나 발해사 연구했다가는 밥 굶기 십상이에요."

지난 28일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만난 국사학전공 대학원생의 말은 우리나라 북방 고대사 연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국정부가 중국 내 고구려 유적에 대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촉발된 역사왜곡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이제는 분노를 넘어 뭔가 문제점을 찾고 대안을 마련할 때다.

뜻있는 사람들은 이번 문제의 본질을 '북방 고대사 연구 소홀'에서 찾는다. 도대체 우리가 북방 고대사 연구에 얼마나 소홀했는지 진단해 본다.

◆ 얼마나 소홀했나=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학위논문수를 비교해 보면 우리가 그 동안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북방 고대사에 얼마나 소홀했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고구려에게 법통을 물려준 고조선 관련 논문은 불과 9편, 고구려 관련논문은 125편, 발해는 96편이다.

반면 남방에서 맥을 이어온 백제는 138편, 신라는 406편, 고려는 201편, 조선은 2813편이다. 북방 고대사에 관한 논문은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학위논문의 불과 6%, 고구려사만 따지면 5%에 불과한 셈이다. 고구려가 존재했던 동시대를 비교해도 4편 중 3편이 남방 연구다.

이 같은 비율은 국사편찬위원회나 국회도서관 등의 소장 자료를 비교해봐도 엇비슷하다.

현재 전국 종합대학 대부분에 사학과나 국사학과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고구려사를 연구한 교수는 10명을 겨우 넘는다. 이 같은 추세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송기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실용학문에 밀려 인문학 자체가 워낙 홀대를 받는 와중에 국사학 연구자는 점점 줄고 있는 추세"라면서 "그중에서도 미래가 불확실한 북방 고대사는 특히 심한 편"이라고 우려했다.

교육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한국사가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의 필수 과목이었지만 사회과에 포함된 선택 과목으로 바뀌면서 학생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자국의 역사인 국사가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인 셈이다.

◆ 고구려사 연구 열세의 배경=북방 고대사 연구가 열세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정치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북방 고대사의 유적과 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 한국땅이 아닌 북한과 중국땅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연구 자체가 힘이 들었던 것이다.

최광식 교수는 "군사정권 시절 도저히 국내에서 자료를 구할 수 없어 일본에서 구해오면 적성국가 관련 문건이라고 툭하면 압수당했다"고 술회했다.

따라서 미약하나마 현장 연구를 할 수 있게 된 건 중국과 수교를 맺은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현실적 문제는 학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여호규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는 "경상도에 있는 대학에선 주로 신라사를 연구한 학자를 교수로 채용하고, 전라도 대학은 백제사 연구자를 주로 채용하는 등 지역성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학들이 자신의 학교가 위치한 지역의 역사에만 관심을 갖다보니 고구려나 고조선, 발해 연구자들은 자리를 잡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학생들이 고구려사 연구를 기피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취업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신체제 이후 국사교과서가 역사 해석의 다양성이 보장되는 검인정 교과서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국정교과서로 전환된 것도 다양한 시각의 연구자 양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학계의 지적이다.

(매일경제신문 2004-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