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日.中 역사훼손 왜 정면대응 않나"

-요즘엔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요.

→크게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이사,아름다운재단 100인 발기인, 친일파사전을 만드는 민족문제연구소 간행고문인데요. 특히 친일파사전 편찬과 관련해서는 이번에 국회에서 예산을 줄이는 바람에 국민모금을 통해 일주일 만에 5억원을 모았어요.

총 3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나머지 25억원은 국민발기인을 모집해 모을 예정입니다. 편찬은 실무자들이 일을 거의 마쳤지만 (친일파사전을)책으로 만드는 기금을 모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서정주 등 친일파 문인들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용서'는 잘못한 자가 속죄할 때 이뤄지는 것이죠. 속죄를 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역사의 비판대 위에 서야 합니다. 역사의 교훈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선배들이 잘못한 모든 것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돼야지요.

-엄격히 말하면 일제시대에 친일파가 아니었던 사람이 있느냐는 항변도 있을 법한데요.

→그런 논리는 바로 친일파들의 자기변명입니다. 일제시대 한국에 들어온 일본인은 80만명인데 이들에게 빌붙은 친일파가 160만명이에요. 바로 이들 때문에 36년이라는 식민지배가 있었던 겁니다. 이들 외에는 친일파가 없어요.

무기를 든 적극적인 독립투사, 군자금을 지원한 소극적인 독립투사, 일제에 징용된 정신대나 징용 노동자 등 절대다수의 민중들이 끝없이 부른 노래가 아리랑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친일파입니까.

-최근 독도와 고구려 문제와 연관된 일본과 중국의 태도를 어떻게 보는지요.

→중국이라는 대국이 소아적인 짓을 하고 있어요. 다른 나라 역사를 자기 역사로 하려는 것은 침략행위와 다름없습니다. 한 국가는 영토 국민 주권으로 이뤄지는데 주권에는 그 나라 국민이 향유해온 역사도 포함됩니다. 고미즈미 일본 총리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 한 것은 이미 침략행위지요. 무력뿐만 아니라 언어도 엄연한 폭력입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주권을 중국은 이미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국가적 행위로 우리 주권을 침해했다면 우리도 국가적인 대처를 해야 합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 외교에서 '강자'인 동시에 '이웃'인 중국과 일본에 대한 대처도 신중해야 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요.

→노무현 대통령이 '내 마누라를 내 마누라라고 자꾸 말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이 말도 일견 맞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야만적인 침략성 발언에 대한 침묵은 곧 묵인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쪽의 무게와 같은 무게의 발언으로 대응하는 것이 민족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길이죠. 계속 침묵한다면 일본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것을 한국이 묵인했다'는 말도 할 수 있습니다.

또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민족의 자존을 세우는 일이 더 큰 이익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전세계엔 대한민국을 지켜보는 수많은 다른 나라가 있습니다.

-평생 분단과 민족문제를 고민해오셨지만 지금 세상에서 너무 민족주의에 집착하는 건 편협하고 폐쇄적인 시각이 아닐지요.

→민족주의를 폐쇄적 공격적 파괴적이라고 말하는 건 히틀러의 민족주의 때문입니다. 히틀러는 게르만을 제일로 취급하고 다른 민족을 탄압했지요.

우선 민족주의가 나쁘다는 논리를 세운 나라들이 어떤 나라인지 주목해야 합니다. 모두 세계에서 강대국이라 불리는 제국주의 국가들 아닙니까.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다른 나라를 경제ㆍ문화적으로 지배하려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이런 시각을 심어놓은 것입니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일어선 제3세계 국가들이 저항하면 안되니까 말이죠.

우리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방어적 개방적 공생적 건설적인 신민족주의입니다. 우리가 통일에 동의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겠습니까?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 민족주의 뿐입니다.

-젊은이들 처지에서 보면 지금은 태백산맥이나 아리랑의 시대와 같은 투쟁적인 시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역사정신이란 치열한 시기에 솟아올랐다가 잦아들 듯, 물이 솟아올랐다 다시 잠복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그런 위기가 온다면 자연스럽게 (역사정신이) 다시 응집돼서 솟아오를 것으로 봅니다.

지금 표피만 보고 요즘 젊은이들이 치열하지 않다고 말해선 곤란합니다. 지금보다 10년 전에는 물질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때도 대학생들은 힘껏 저항했습니다. 돈 받고 표를 찍는 이는 노인들이지 젊은이들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 역사에 위기가 다시 찾아온다면 의식 있는 저항세력들이 더많이 나오리라 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리랑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읽을 이유가 없죠. 서울대 도서관에 소장된 아리랑을 보면 표지가 너덜너덜합니다. 그들은 그걸 읽으면서 의식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에요.

-민족주의는 세계화 추세와는 배치되는 가치처럼 보이는데.

→물론 인류의 행복, 평화는 우리 모두의 이상이고 삶의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화와 행복이 보장되려면 일단 각 단위 민족의 다양성이 인정돼야 합니다.

맹목적인 세계화가 위험한 것은 이것이 강대국의 논리, 강대국의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 세계의 언어는 강대국의 몇 가지로 통일될 겁니다. 지구상의 수천 가지 아름다운 언어들이 말살되고 없어지는 거죠.

우리가 세계를 여행하는 건 다른 민족의 다양성을 보기 위한 겁니다. 이 획일성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하루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9ㆍ11테러를 겨냥해) 20세기를 문화의 세기라 치장했던 인류에게 2001년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래도 세계화를 부르짖는다면 21세기에도 이런 비극이 계속될 겁니다.

작위적인 세계화, 강압적인 무역개방이 추진돼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석가모니께서 '탐욕이 너를 망칠 것이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강대국도 그들의 편의만을 위해 약소국을 개방시키고 강압해서는 안됩니다. 앞으로도 정치인, 기업인들은 계속 강대국의 논리를 답습해 세계화를 추진할 것으로 압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쓴소리를 하는 게 우리 문인들의 임무, 조정래의 임무입니다.

-통일은 어떻게 돼야 할까요.

→민족의 대과제이지만 서두르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대결과 갈등 속에서 50년 세월을 살면서도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화해와 통일로 큰방향을 잡은 상황입니다. 부산 아시안게임 때 300명이 넘는 선수들을 데리고 와서 먹이고 재운 것 같은 일들이 작은 통일 아니겠어요? 유니버시아드 대회, 올림픽의 단일기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안게임 때 2등 하는 것보다 민족의 협력을 알리는 게 작가와 언론의 몫입니다.

독일식 흡수통일도, 베트남식 전쟁통일도 안됩니다. 50년을 기다렸는데 앞으로 50년은 왜 기다리지 못합니까. 대명제임을 기억하고 노력하면서 기다립시다. 삼국시대가 있었듯 분단시대가 있었음을 훗날 기록하면 됩니다.

◆'문학의 위기'라니 어림없는 소리

-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은데요.

→(그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아요. 문학이 위기라는 말은 지난 60~70년간 수없이 나왔습니다. 라디오, 영화, 흑백TV, 컬러TV, 컴퓨터ㆍ인터넷이 나올 때마다 계속된 얘기예요.

하지만 문학의 위기보다 TV가 나왔을 때 같은 영상매체인 영화의 위기가 더 컸다는 걸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영화는 다시 TV를 압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새로운 매체는 그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어요.

인간은 여러 매체를 공유하지 하나만 선택하지 않습니다. 문학은 다른 매체의 등장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면서 내용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일궈왔어요. 18~19세기 문학의 독주시대에 비해 오늘날 독자는 숫자도 많고계층도 다양하지 않습니까. 60년대만 해도 10만부가 베스트셀러였지만 지금은 100만부가 넘어야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인터넷이 또 다른 위기를 가져올 수 있지만 언어가 있는 한 문학은 존재할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작가가 더욱 정진해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지 독자가 없다는 핑계를 대선 안됩니다.

-한국 문학의 외향적인 과제로 노벨상을 드는 이가 많습니다.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는 한국 작가로서 의견은 어떠신지.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도 나왔으니 언젠가는 문학상도 받게 되겠죠. 그러기 위해선 우선 작품의 번역이 제대로 돼야 합니다. 독자들에게서 너무 많은 격려를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이미 노벨상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후배작가들 작품은 읽어 보시는지.

→시간나는 대로 봐요. 최근엔 김훈 씨의 '칼의 노래'를 좋게 읽었어요. 역시 중요한 건 작가의 치열성이라는 교훈을 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작가들이 '역사 체험이 없다'는 걱정을 많이 하는데 역사적 체험만이 작가의 역량은 아니라는 시사점을 준 거죠. 작가는 하루 3시간 글을 쓴다면 무얼 쓸지를 찾아 하루 10시간은 고민해야 합니다.

◆기업 정치자금 변명은 비겁한 짓

-요즘 정치자금문제로 기업과 정치권이 잠잠할 날이 없는데.

→대선관련 비자금은 기업의 돈이 아닙니다. 이 돈은 결국 노동자와 소비자의 것이죠.

껌을 만드는 회사라면 부정한 돈을 정치권에 주는 만큼 소비자들의 껌은 얇아지는 겁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이어져 수천억 원이라는 돈이 생기는 거죠.

기업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이런 비자금을 주는 겁니다. 정치인이 요구해서 줬다기보다 자발적으로 주는 경우가 많아요. 기업이 이런 일들을 하지 않을 때 경제의 순환이 제대로 되고 부가 제대로 분배되는 사회가 오는 겁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성격상 어느 정도 '반칙'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기업을 존중하고 신임하지 않는다는 게 우리 기업인들의 공통적인 불만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업자득이죠.

우리가 미국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기업활동과 관련해서는 본받을 미덕도 많습니다. 빌 게이츠가 재산의 반을, 조지 소로스도 수입 중 30%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합니다. 기업인에 대한 존경은 이런 데서 나오는겁니다. 우리나라가 소득 1만달러 시대에 들어선 건 국가ㆍ기업의 역할도 있었지만 국민의 노력이 컸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국민의 노력에 대해 기업의 사회환원이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정경유착'의 반세기 역사는 결코 인간다운 역사가 아닙니다.

-좀 엉뚱한 얘기지만 고액권 화폐를 만들자는 얘기가 많은데 화폐모델은 누가 좋을까요.

→일본은 여류작가가 들어가기도 한다더군요. 우리나라도 그런 쪽으로 문화적인 인물도 올리기도 하고, 식민지시대를 살면서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신채호 한용운 김구 등을 고려해도 좋겠죠. 안중근 의사도 한번 쯤 넣을 필요가 있겠고….

<대담 = 이동주 시티라이프 팀장 / 허연 기자 / 정리 = 김태근 기자>

(매일경제신문 2004-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