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방문 중인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는 27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하나의 중국’ 정책과 중국의 인권개선 필요성, 양국 협력강화 등을 담은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두 나라 수교 40주년에 맞춰 이루어진 후 주석의 프랑스 방문은 주석 취임 이후 첫 유럽 국가 공식방문. 이집트 가봉 알제리로 이어지는 유럽-아프리카 순방 일정이지만 유럽에서 프랑스 한 나라만 방문하는 것은 양국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 나라의 관계뿐 아니다. 동서양의 주요 강국인 두 나라 정상이 국제질서 전반을 논의한다는 점에 외신들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 일변도의 세계질서에 변화를 모색하는 다자 질서 구축의 첫걸음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붉게 빛난 에펠탑=시라크 대통령은 26일 회담에서 중국이 유지해온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고 천명했다. 이어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열린 만찬에서는 대만의 3월 국민투표 계획을 ‘중대한 실수’라고 비난했다.

이날 엘리제궁에서 멀지 않은 에펠탑은 붉게 빛났다. 프랑스는 올해를 ‘중국의 해’로 지정하고 음력설과 후 주석 방문에 맞춰 에펠탑에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색 조명을 비추고 있다.

▽ ‘다극화 세계’ 합의=후 주석은 만찬에서 “중국과 프랑스는 다극화 세계의 필요성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다극화 세계’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 온 시라크 대통령이 주장하는 키워드. 두 나라 정상은 이어 한반도 문제를 포함해 이라크와 이란, 중동과 아프가니스탄 문제 등 국제질서 전반에 대해 논의했다.

최근 유럽에서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할 파트너로서의 중국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26일 열린 유럽연합(EU) 외무장관 회의에서는 톈안먼(天安門)사태 이후 계속된 EU의 대(對)중국 무기 금수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후 주석이 EU 국가 중 교역량이 4위에 불과한 프랑스를 첫 유럽 방문국으로 택한 것을 놓고 “프랑스를 교두보로 중국-EU를 연결하는 ‘대미(對美) 축’을 구축하려는 시도”라는 분석도 나왔다.

(동아일보 2004-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