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구려사 왜곡의 속사정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고 현재 중국에 편입된 소수민족의 역사와 중국 영토 안에서 이뤄진 역사는 바로 중국사의 일부라는 논리다. 자칫하면 멀쩡하게 눈 뜨고 우리 역사를 도둑 맞을 판국이다.

그렇지만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자. 중국이 왜 뜬금없이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하는지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자.

중국에서 고구려 역사가 자리잡고 있는 동북(東北) 지역은 사실 중국 입장에서는 뿌리가 없는 땅이다. 한족(漢族)의 눈으로 보면 그렇다. 주로 만주족(滿州族)과 조선족(朝鮮族)이 자리를 잡고 있던 땅이다.

지금 중국에 있는 조선족 숫자는 약 200만명으로 추산된다. 조선족 대부분은 주로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 3성에 모여 산다.

200만명이 모여있는 조선족의 정체성이 문제다.

조선족은 중국 사람인가, 아니면 중국 거주 한민족인가.

물론 조선족의 국적은 중국이다. 중국은 소수민족 자료에서 조선족은 이르게는 19세기, 늦게는 일제시대에 만주지역으로 이주한 것으로 소개 한다.

뒤집어 보면 조선족은 확실한 중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 혹은 북한 교민도 아닌 상태다. 조선족이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정체성이 애매하다.

화제를 바꿔 중국 서부로 눈을 돌려보자. 서부에서 가장 큰 땅이 신장( 新疆)위구르 자치구다. 또 장족(藏族)으로 불리는 티베트 사람들이 사는 티베트가 있다.

위구르족이 사는 신장 지역을 가면 공기부터 다르다. 중국 정부는 펄쩍 뛸 일이지만 이른바 '식민지' 공기가 느껴진다.

보도가 안돼서 그렇지 위구르인들이 '독립운동'이라고 부르는 '테러'가 빈번한 지역이다. 티베트 역시 중국에 합병된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지역의 불안은 중국이 달라이 라마를 대하는 태도에서 분명하게 엿 볼 수 있다.

중국은 겉보기에 정치가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 보면 중국 서부 지역은 정치적으로 상당히 취약한 지역이다.

서부 지역과 대칭되는 지역이 동북 지역이다. 조선족이 모여 사는 동북 3성도 따지고 보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이다. 한족의 뿌리가 없는 이주의 역사로 만들어진 땅이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는 배경도 이런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중국 입장에서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은 200만명의 소수민족을 끌어안아야 한다.

서부지방과 달리 동북지방을 확실하게 안정시켜 놓을 필요가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 역사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사실 중국의 이런 정책은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다. 예전에는 동북 3성의 조선족 밀집지역은 조선족이 최고책임자 자리를 맡아왔다. 지금은 다르다. 최고책임자는 한족이 맡고, 조선족은 부책임자 자리를 맡는다. 중국의 동북 3성에 대한 정책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다른 각도에서 동북 3성을 보자. 중국의 동북지방은 개혁개방 이전에는 중공업이 발전한 지역이었다. 지금은 대표적으로 낙후된 지방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동북지방 발전계획을 수립해 발표했다. 동부 연안지역의 경제가 일정 수준에 올라서면서 서부 지역 발전을 위한 서부 대개발 정책과 함께 동북 지역도 발전시키겠다는 정책이다.

여기에는 한국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홍콩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선전(深玔)을 개방했고 대만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샤먼(廈門)을 개방한 것처럼 동북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 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

조선족이 몰려있는 지역에 한국 자본이 몰려오는 경우를 중국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구려사 문제가 역사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고 동시에 경제적인 문제인 이유다. 특히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에 대비해서라도 중국은 동북 지역을 정치ㆍ경제적으로 우선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서부의 위구르족 티베트족 문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역사 문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ㆍ경제적 상황까지 고려해 종합적이고 장기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

(매일경제신문 2004-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