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유산, 외교분쟁보다 '한국입장' 알려야"

고구려벽화 세계유산 신청 이끈 히라야마 도쿄예술대 학장

“6월에 중국의 쑤저우(蘇州)에서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유물에 대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을 위한 총회가 열립니다. 중국이 의장국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지나치게 정치문제화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왜 북한의 고구려 고분 벽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하는지 한국의 입장을 차분히 설득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난 16~1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북한과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유적에 대해 각각 세계유산위원회(WHC)에 등록을 권고하기로 의견을 모았을 때 누구 못잖게 기뻐한 사람이 히라야마 이쿠오(平山郁夫· 74) 도쿄예술대 학장이다.

그가 고구려 고분 벽화와 처음 만난 것은 벌써 36년 전. 1968년 사진으로 북한 수산리 고분 벽화를 본 그는 한 눈에 빠져들었고, 최근에는 줄곳 북한을 설득, 고구려 벽화의 세계유산 지정을 이끌어냈다.

“사진으로 벽화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고대 일본의 일부를 통치했다는 ‘히미코 여왕’이 실제로 있었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일본화가인 그는 벽화를 모티브로 여인의 그림을 그렸다.

그런지 몇 년 후, 정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일본의 나라에서 다카마쓰(高松)라는 고분이 발견됐는데, 이 고분 속의 벽화가 히라야마씨가 그렸던 그림과 너무나도 닮았던 것이다.

“원래 고유한 의미의 일본 민족이란 없습니다. 일본은 말하자면 여러 도래(渡來)민족이 블렌드(혼합)된 민족이예요. DNA를 추적해 보면 고구려 등에서 온 유전자가 제게도 많이 섞여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입장으로 보면 고구려 벽화를 보존하는 것은 일본인의 원류를 보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고분 벽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을 하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넘어야 할 벽이 많았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을 위해 필요한 계측기자재 등이 북한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컴퓨터 제어를 통해 온도측정을 해야 하는데, 컴퓨터는 대 공산권 수출통제기구(COCOM)에서 북한 반입을 금지하고 있어 엄격한 제한 하에 반입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신청한 것이 2002년 1월. 그러나 그해 여름 실사(實査)에서 부정적인 결론이 나오는 바람이 이번에 다시 신청을 했고, 중국과 공동 추천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4~6세의 유물로 고구려 유물은 현존하는 것 중에서는 아시아 최고봉입니다. 수나라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전란의 시대라서 4~6세기의 유물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요.

일본 다카마쓰에서도 청룡·백호·주작·현무의 4신도가 등장했지만, 그 크기는 아주 작아요. 거기 비하면 고구려 벽화는 아주 크고 힘찹니다. 예술적으로도 나무랄 데 없습니다. 다카마쓰 고분은 고구려에서 온 사람들의 기술로 만들었을 겁니다. 일본 입장에서 보면 아주 신세를 많이 진거죠.”

그는, 기자가 만난 일본인 중 유일하게 ‘조선반도’라고 하지 않고 ‘한반도’라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한자를 적으며 설명하는 그는 ‘김대중’이란 대통령 사인이 인쇄된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최근 국내 일부 언론에 그가 “고구려는 한국의 민족사”라고 말했다고 보도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한·일문화교류협회의 좌장이기도 하지만, 일본·중국 우호협회장이기도 하다.

“고구려가 한족(漢族)은 아닙니다. 다만, 중국에 세계문화유산이 39개 있는데, 위구르족이나 몽고족 같은 소수민족의 문화유산도 중국은 자국 내 소수민족의 유산이라는 입장을 취하며 신청을 해왔습니다. 지난번에는 중국측이 북한 고구려유적의 세계유산 등록에 부정적이었는데, 북한 것을 먼저 등록하면 중국 쪽 유적을 등록하지 못할까봐 그런 모양입니다.”

그는 “어느 나라 신청으로 유산이 등록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기독교 유적은 세계 어느 나라에 있어도 기독교 유적이고, 고구려 유적은 세계 어디에 있어도 고구려 유적입니다.” 고구려가 어느 나라 역사인가는 한국이 직접 메워줘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조선일보 2004-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