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정체성(귀속문제)에 대한 중국의 연구 현황과 논리

『중국고구려사』의 중국사로 본 고구려사 시대 구분

1998년 발행된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펴낸 변강사지 총서 1호에 『고대고구려역사논총』이란 제목을 붙였다. ‘중국+고구려 역사’라고 고구려사 앞에 나라이름을 써서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라는 것을 표지에서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이다. 그런데 2002년 말(실제는 2003년 초)에 『중국고구려사』란 제목의 책이 출판되었다. 통화사범대학 고구려연구소 경철화 교수가 지은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 학자들은 고구려사를 시대 구분할 때 고구려 자체의 역사에서 갖는 특징적 사건이나 시기를 가지고 시대 구분을 하였다.

① 초기 - 흘승골성 수도 시기(기원전 35~기원 3년), 중기 - 국내성 수도 시기(3~427년), 후기 - 평양 수도 시기(427~668)  
② 조기 - 장수왕 천도 이전(한?위?진 시대), 중기 - 고구려 전성단계(대개 남북조시대), 만기 - 고구려 쇄망단계(수?당시대)
③ 전기 노예사회 - 건국부터 평양 천도까지, 후기 봉건사회 - 평양 천도 이후 멸망까지

그러나 이번에 나온 『중국고구려사』는 중국 역사에 따라 고구려를 구분하고 있다.

① 양한(兩漢)시기 : 추모왕~산상왕(10왕) 고구려 정권을 건립하여 점차 튼튼해지며 대외 확장에 힘쓴다. BC 37~227년
② 위?진(魏晋)시기 : 동천왕~호태왕(9왕) 고구려 사회가 변혁, 발전하고, 강역을 확대한다. 227~412년
③ 남북조시기 : 장수왕~평원왕(6왕) 고구려 최대의 발전과 안정기. 413~590년
④ 수?당시기 : 영양왕~보장왕(3왕) 고구려 국세가 쇠약해지고 내부 모순이 더해져 멸망에 이른다. 590~668

고구려를 중국 왕조의 흥망에 따라 시대 구분한 것이다. 한 나라의 시대를 구분하면서 다른 나라의 왕조에 따라 시대구분을 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논리이다. 마치 남의 생일을 내 생일에 따라 결정하는 것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글이다.

소위 중국이란(원래 중국이란 나라는 없었다. 편의상 명칭으로 사용한다) 진?한 이후 북송(320년)을 빼고는 300년 이상 된 나라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700년이 넘는 고구려사를 중국 학자들이 시대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일일 것이다. 경철화는 고구려 705년 동안 중국의 흥망을 4단계로 나누었는데 이 자체가 문제성을 안고 있다.  

고구려 한 나라가 705년 동안 번영을 누리는 동안 고구려의 서방(현재의 중국)과 북서방(현재의 몽골)에서는 35개의 나라가 생겼다가 없어졌다. 그 가운데 70% 가까운 24개 국가가 50년도 못 가고 망했으며, 86%가 넘는 30개 국가는 100년도 못 가고 망했다. 200년 이상 간 나라는 단 두 나라뿐이다 - 한나라(221년), 당나라(290년)

* 한나라(221년)는 대부분 고구려 건국 이전에(고구려 건국 10년 망함) 존재하였고, 당나라(290년)는 대부분 고구려 멸망(당나라 건국 후 50년) 이후에 존재하였다.
한편 35개 나라 가운데 절반 정도는 중국의 한족이 아닌 북방민족이 지배한 나라였다.

50년 미만의 나라 (24개 나라)
후양(?) - 7년, 서연(선비) - 10년, 남연(선비) - 13년, 동위 - 17년, 남양(선비) - 18년,   전연(선비) - 22년, 서위 - 22년, 서양 - 22년, 제 - 24년, 후연(선비) - 25년, 전조(흉노) - 26년, 하(흉노) - 26년, 북주 - 26년, 북연 - 28년, 북제 - 28년, 진 - 33년, 후조(?) - 34년, 후진(羌) - 34년, 수 - 38년, 촉 - 43년, 북양(흉노) - 43년, 위 - 46년, 성(?) - 46년, 서진(선비) - 47년
*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촉나라 위나라는 이 곳에 속한다.

100년 미만인 나라(6개 나라)
오 - 52년, 진 - 52년, 양 - 56년, 송 - 60년, 전진(?) - 61년, 전양- 6년
* 삼국지의 오나라는 이 곳에 속한다.

100년 이상인 나라(5개 나라)
동진 - 103년, 북위 - 149년, 후한 - 196년, 한 - 221년, 당 - 290년

이 연표는 중국의 역사책에서 뽑아 정리한 것이다. 고구려 한 나라가 705년간 이어지는 동안 중국은 같은 민족끼리 또는 다른 민족과 수많은 투쟁과 전쟁의 역사가 이어져 편한 날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나온 35개국은 모두 중국이 자국의 역사로 치는 곳이다. 경철화가 이런 역사를 한족 위주로 4단계로 나누는 것 자체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도대체 고구려가 중국사라는데 705년 동안 꿋꿋이 이어온 고구려가 수없이 흥망을 반복하는 어떤 나라에 속했다는 말인가?



A. 중국 학자들의 논문은 연구 인력과 성과가 많은 반면 논문으로서 완성도가 떨어진 것들이 많다.
1) 확실한 전거를 대지 않은 것들이 많다. 주를 확실히 달지 않기 때문에 누구 논문이 원본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2) 저명한 논문집에도 논문 형식을 취하지 않고 마치 수필처럼 쓴 것들이 많다.
3) 같은 논문을 여기저기 중복해서 싣는 경우도 상당 수 있다. 귀속문제만 보더라도 새로운 연구성과라기 보다는 똑 같은 내용이 여러 책에 수도 없이 반복해서 나온다.    

B. 한국이나 일본 학자들, 심지어는 미국의 학자들도 고구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중국어와 일본어를 해독하고 자료를 섭렵하여 자신의 연구에 반영한다. 그러나 중국 학자들은 극히 일부 번역본을 빼놓고는 외국의(특히 한국어 자료) 연구 성과를 거의 도외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는 객관적인 연구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C.고구려사를 연구하면서 연구성과를 통해 귀속 문제를 다루는 학자보다 귀속 문제를 다루기 위해 고구려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더 많을 정도로 학술적인 객관성이 부족하다. 반면에 한국 학자들은 그 연구인원이 적다는 사실 빼놓고도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데 급급했지 고구려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은 거의 하지 않았다.

D. 고구려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만주 전역이 옛 고구려 영토였기 때문에 요령성, 길림성 의 고고문물연구소를 비롯하여 박물관 연구 담당자들은 모두가 고구려사를 전공한다고 할 정도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최근 주요 학자들은 대부분 정년퇴직을 했거나 정년이 가까운 반면 젊은 학자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중국 학계도 객관적인 학문적 자세와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젊은 학자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문제는 젊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역사 연구에 흥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E. 폐쇠적인 연구 분위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연구성과가 나오기 힘들다. 앞으로 한국, 일본, 몽골, 러시아 들과 공동연구를 통해서 적어도 동아시아 각 국이 인정하는 보편타당성 있는 역사기술이 필요하다. 중국은 아시아의 수많은 국가들과 국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 인식은 아시아 나아가서는 세계 평화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와 같은 중화사상 위주의 학문 연구는 아시아사나 세계사에 크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고 궁극적으로 중국 자체에게도 결정적인 타격을 줄 것이다. 중화사상을 내건 중국 역사는 끝없는 정복전쟁의 연속이었고 이민족에 지배당한 역사가 길다.

진나라 이후 300년 이상 지속된 나라가 북송 한 나라뿐이라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5호16국(4세기 전후), 북위(149년), 요(210년), 금(120년), 원(109년), 청(297년)은 사실상 이민족의 지배였으나 이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해야 하는 아픔도 사실은 모두 지나친 중화사상에 있었던 것이다.

(고구려연구회/서길수 교수 2004-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