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인은 한국인인가

한국 불교철학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물 가운데 고구려의 승랑(僧朗) 스님이 있다. 그는 중국 삼론종(三論宗) 창설의 선구자이기도 해 중국 불교사에도 반드시 등장한다. 승랑은 '랴오닝(遼東) 사람'이다. 당시 랴오닝은 고구려에 속했었지만 지금은 중국 땅이다. 승랑은 한국인인가 중국인인가.

혈통과 역사의 계승성을 중시하는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승랑은 한국인이다. 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식으로 보면 승랑은 중국인일 수 있다. 현 중국 영토에서 명멸한 모든 소수민족의 역사는 중국사의 일부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중국의 옛 역사서는 승랑이 중국인이라고 억지 부리진 않는다.

조성택(고려대.불교철학) 교수는 "중국 사상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승랑에 대한 중국의 옛 기록을 보면 중국 사람은 아니었다는 의식을 깔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조교수는 "요즘의 민족국가 개념을 적용할 수 없는 고대사에 오늘의 국적을 대입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더 복잡한 경우는 발해다. 발해는 현재 영토로 보면 중국과 러시아에 걸쳐 있다. 건국의 주체가 고구려인이라는 점과 역사의 흐름을 강조하는 우리는 발해를 한국사에 포함시킨다. 한국.중국.러시아가 모두 자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형국이다.

발해사를 연구한 송기호(서울대.국사학) 교수는 "'역사 연고권'과 '영토 연고권'을 같이 보는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자국내 소수민족 보호 차원을 넘어 인접 국가에도 위협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하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순수 혈통과 혼을 강변하는 것은 이제 설득력이 없고, 역사의 흐름을 강조하는 우리의 관점을 강화할 논리를 개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가 고대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9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한국 교민이 엉뚱하게 희생된 폭동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LA폭동은 한국사인가 미국사인가. LA는 미국 영토이므로 미국 현대사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현대사에 포함돼선 안되는가. 해외 이민사를 세계와 한국이 교류하는 역사에 포함할 수 있다는 데 전문가들은 대체로 동의한다.

중국과 관련해서 본다면 조선족 문제가 있다. 현재 중국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한국은 어떠한 모국(母國)이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중앙일보 2004-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