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의 살라미 전략

냉전 초기 서유럽국가들은 숫적으로 우세한 소련의 재래식 병력을 두려워했다.

미국이 소련의 재래무기 공격에 대해서도 핵무기로 보복하겠다고 선언하고 나토 (북대서양조약기구)가 핵우산을 제공했지만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소련군의 살라미(salami)전략 때문이었다.

살라미란 한 지역씩 전진하는 작전이다.

예를 들어보자.

서베를린에서 대규모 폭동과 화재가 발생한다.

혼란을 틈타 동베를린 소방대가 인도적 차원이라며 베를린장벽을 넘어선다.

이때 미국이 핵공격을 할 것인가.

하지 못한다.

이어 동독 경찰이 치안지원차 뒤따라 들어간다.

이 때도 망설이게 된다.

얼마뒤 동독 지원인력들이 슬그머니 동독군으로 대치된다.

그제서야 미국은 허둥대며 핵공격을 검토하겠지만 이내 포기하게 될 것이다.

도시 하나 때문에 핵전쟁을 벌일 순 없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대통령은 매 단계마다 핵미사일 버튼만 만지작거리다가 베를린을 통째로 내주게 된다.

미국은 이런 헛점을 보완한 "극단전략"을 수립했다.

우선 일정 수준의 도발이라고 판단되면 자동적으로 핵보복이 이뤄진다고 천명했다.

그 한계점이 어느 지점인가는 소련이 가늠못하도록 비밀에 붙였다.

미해군의 경우 소련과의 충돌이 발생하면 무조건 대서양의 모든 소련 잠수함을 격침시키도록 교전수칙을 수정하면서 "미해군은 소련의 핵잠수함과 일반잠수함을 구별할 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소련의 어설픈 공격은 곧바로 핵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식이다.

고이즈미 일본총리의 대외전략도 살라미에 가깝다.

그는 수년간에 걸친 단계적 영역확대를 통해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관철시켰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연례행사화하는데 성공했고,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선언 함으로써 독도를 국제적 분쟁지역화하려 한다.

그런데도 한국정부는 매번 비난성명을 낼 뿐 번번히 당하고만 있다.

원래 살라미 전략은 대외이미지는 전혀 고려치 않는 막가파식이다.

상대가 주춤거리면 도발적 영역확대를 기정사실화한다.

우리 정부처럼 상대국의 양심과 양식에 호소해선 막을 수 없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도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려고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1백여년만의 거센 파고에 정부는 보다 전략적이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주태산 맥스무비 사장 2004-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