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동북아 역사 전쟁] (下) 대응책은

중·日 주장 철저히 분석, 논리에 맞서야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알려지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공동대책위’, 고구려연구회 등 학계는 학술회의·강연 등 대응활동에 나섰다. 흥사단·광복회 등 시민단체들도 ‘고구려역사 지키기 범민족시민연대’를 결성, 1000만명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라는 민간단체는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에 북한의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다량의 이메일을 보냈다. 중국과 일본의 민족주의가 한국의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고 우리 역사와 영토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일의 민족주의에 한국 역시 민족주의로 대응하려는 시도에는 문제점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세 나라의 민족주의가 정면 충돌할 경우 우리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동북아의 역사 갈등은 국제 사회에서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을 갖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 패권주의(覇權主義)에 ‘광개토제왕(帝王)’을 강조하며 맞서는 방식은 대외적으로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중·일 역사 갈등을 ‘동북아 공동체 형성’이라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풀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대두하고 있다. 지역 협력체 구성이 전 세계적 추세인 만큼 한·중·일도 좁은 민족주의를 넘어서 동북아 공동의 역사 인식과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훈(李鍾燻) 전 중앙대 총장은 “한·중·일은 경제 협력과 동북아 긴장 완화 등 함께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를 앞에 두고 있는 만큼 역사 갈등을 정치·경제적 이해와 연결지어 더 넓은 틀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한·중·일 세 나라의 국력 차이가 크고 중국과 일본이 주변 국가를 배려하지 않는 상황에서 ‘동북아 공동체’는 현실성이 없는 공허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중국·일본 간의 충돌도 엄연한 현실인 만큼 한국 혼자 ‘공동체’를 외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독도 문제를 깊이 연구해 온 원로학자는 “지금은 역사 갈등의 시작 단계로 우선 고구려사와 독도를 지키려는 노력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선 중국과 일본의 주장에 대해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이를 세계에 알리는 등 실질적인 능력을 기르는 것이 시급하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중국은 한국 학자들의 관련 논문을 모두 번역하는 등 우리의 움직임을 훤히 읽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중국 상황의 파악을 언론 보도와 개인 제보에 의존하는 실정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독도에 대해서도 일본 주장을 무시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논리와 근거 자료를 치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송기호(宋基豪) 서울대 교수는 “정부와 학계가 힘을 합하여 중국과 일본의 관련 자료를 철저하게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4-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