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고구려 도읍ㆍ왕릉 차지할 듯"

◆고구려 역사왜곡 막아야 한다 (下) 전문가 좌담◆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북한과 중국이 각각 신청한 자국 영토 내 고구려 문화유산에 대한 세계유산 등록을 권고한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유네스코가 북한ㆍ중국 모두의 손을 들어준다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문제다. 북한은 겨우 고분군 하나만 문화재로 건지게 되지만, 중국은 고구려 수도와 왕릉까지 모두 거머쥐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고구려사왜곡 공동대책위원장인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여호규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임기환 한신대 학술원 전임연구원이 매일 경제 주최로 한 자리에 모여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움직임에 대한 한민족의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 사회(허연 팀장) =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시작은 언제이고 얼마나 심각합니까.

→ 최광식 교수 = 85년 중국학자 왕청리(王承禮), 웨이궈중(魏國忠)이 발해를 '당나라 예속 하의 지방민족정권'으로 규정한 것이 고구려사 왜곡의 시작이었습니다. 지난 7월 중축측이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보존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의를 제기해 고의적으로 방해하고 중국 사회과학원이 지린(吉林)성 지안(集安)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하면서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 여호규 교수 = '동북공정'은 이미 96년 착수된 프로젝트에요. 중국은 90년대 초반 조선족 사회에 '코리안 드림'이 퍼지고, 북한이 체제 위기에 내몰리면서 만주 지역 소수민족의 정체성에 불안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동북공정'은 역사적 차원에서 동북아 지역에 접근해 이곳을 중국 중심 체제로 안정화시키기 위한 장기 전략입니다.

- 사회 = 중국은 고구려가 당나라의 지방정권이었으며, 고려가 고구려에 대한 전통 계승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학문적 틀안에서 볼 때 타당성이 있나요.

→ 임기환 전임연구원 = 고구려가 조공을 바쳤다는 근거를 내세워 지방 정권이라는 괘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조공은 동아시아 전체에 걸쳐 적용된 외교 논리였습니다.

→ 여 교수 = 80년대까지 중국 학자들은 수나라 양재와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했다고 파악했어요. '침략'이란 말 자체가 고구려를 독립국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 최 교수 = 고구려 멸망 후 유민 90%는 발해 주민으로 살았고 10%만 통일신라로 흡수됐어요.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가 고구려 아닌 신라만 계승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사회 = 국내 학계 시민단체의 반발에 대해 중국 정부의 공식적 반응 이 있었나요.

→ 최 교수 = 외교 채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은 있습니다. 중국측은 정부 기관은 관련이 없으며 일부 소장학자가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사회과학원은 엄밀히 국가기관이며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 임 전임연구원 = 중국 정부가 민족문제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회과학 원장은 부총리급으로 당서열 7위에요. 게다가 '동북공정' 책임자인 마대정(馬大正)이 66세이고 주도 세력들이 모두 60~70대 노학자들로 중국 학계의 중심입니다.

-사회 = 최근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권고도 있었는데요, 북한과 중국 양국의 고구려 고분군이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 재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요.

→ 여 교수 = 중국이 고구려 수도와 왕릉까지 모두 신청한 반면, 북한은 고분군에 불과합니다. 유네스코가 모두의 손을 들어준다고 해도 북한은 겨우 문화재 하나만 건지게 되고, 중국은 고구려 역사 전체를 거머쥐게 되는 셈입니다. 중국의 신청만 받아들여지는 것과 다름없는 결과입니다.

-사회 = 정부에서 '고구려사 연구센터'를 정신문화연구원 부설기관으로 내달중 설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최 교수 = 고구려사 연구센터는 중국에 대응해 민족사를 지키는 중대한 국책 사업이 돼야 합니다. 그러나 유신체제에 설립된 정문연은 폐쇄적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고구려 연구학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

→ 임 전임연구원 = '고구려사 지키기'는 정부와 학계뿐 아니라 시민단체와 국민을 모두 껴안고 가야 위력을 발휘합니다. 남북 공동연구, 국제 교류,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이벤트까지 역동적으로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과연 정문연이 적합한 단체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사회 = 고구려사 연구센터가 어떤 과제부터 해결해야 합니까.

→ 최 교수 = 한국 고대사를 전공한 박사가 14명에 불과하고 자료도 미미합니다. 90년대 이전에는 만주지역은 물론이고 후기 고구려 문화가 꽃피운 평양에 가지도 못했구요. 그나마 일본이나 미국에 출장가서 북한과 중국에서 나온 관련 자료를 복사해 오면 공항에서 번번이 압수됐습니다. 따라서 중국에 맞서기 위한 치밀한 자료 수집이 시급합니다.

→ 여 교수 = 한반도가 고구려의 뿌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평양을 고구려 후기문화 유적지로 유네스코에 신청해야 합니다. 또 고구려뿐 만 아니라 고조선 만주 발해 등 북방지역 전체를 연구해야죠.

→ 임 전임연구원 = 끊임없이 연구할 수 있는 학의 후속세대도 양성해야 합니다.

-사회 = 정부의 고구려사 연구센터 설립과 별도로 학계가 추진하는 대책이 있습니까.

→ 최 교수 = 먼저 한국고대사학회가 30일 오후 2시 서울 대우재단빌 딩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합니다. 또 3월 26, 27일 남한 북한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학자들을 모아놓고 고구려 문화의 정체성을 알리는 국제 콘퍼런스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참석 =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 여호규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 임기환 한신대 학술원 전임연구원 / ◇사회 = 허연 매일경제 학술팀장

(매일경제 2004-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