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역사의 충돌’ 해법은 없는가

(::1.민족주의의 충돌을 넘어 공존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 사이에 민족주의적인 공방이 뜨겁다. 중국의 고구려사 자국 역사 편입,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와 독도 영유권 망언등을 둘러싸고 ‘동북아 국가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이럴 때마다 한국은 매번 냄비 끓듯 ‘독도는 우리땅’을 외치고, ‘만주는 한국의 고토’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이런 외침이자국의 민족주의를 고취하는 마취효과는 있을지언정 문제 해결에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학계에서는 설령 중국과 일본이 국가주의를 외치더라도 그 사이에 낀 한국이 민족주의를 앞세워서는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폭력적 민족주의에 포위된 한국이 같은 국수주의로 맞설 경우 당장의 실리와 어긋날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동북아의 평화와 공존을 위협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이 동북아 국가주의 시대에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한국의 선택은어떤 것이어야 할까.

문화일보는 한국이 패권 대신 동북아의 평화와 공존을 견인하기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이런 삼국 구도에서 한국의 이익을극대화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모색하는 시리즈를 내놓는다. 관련학자와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이 시리즈에서 문화일보는 한·중·일 삼국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동의 집’을 짓기 위해학계와 시민, 정치권과 정부, 경제계 등이 장단기적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핀다.

새해 벽두부터 뒤숭숭하다. 정치문제로 내부가 죽끓듯하더니 그예 바깥에서 돌들이 날아온다.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일본 총리의 독도 망언으로 한국은 졸지에 포위되었다. 안의 근심이 바깥의 환란을 불러들인다는 옛말이 이번에도 어그러짐이 없다. 내우(內憂)와 외환(外患)이 함께 어울려, 가뜩이나 요란한한국사회는 바야흐로 백가쟁명(百家爭鳴)의 형국을 띠고 있는 중이다.

고구려를 중국 변방의 소수민족 정권으로 중국사에 편입하려는동북공정은 중국 사회과학원이 추진한다고 한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국책아카데미다. 이 때문에 동북공정이 자본주의사회처럼민간부문에서 우발적으로 돌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또 중국이 온통 동북공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양과장할 일만은 아니다. 중국은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과 접경한 일종의 제국이다. 제국경영의 동북지방 대책이 동북공정일진대 현재 중국이 당면한 과제의 총체 속에서 그 의미를 궁구하는 변별력도 요구된다.

얼마전 우리 신문에도 보도되었듯이 중국정부는 동북지역에 대한대규모 재건사업에 착수하였다. 일찍이 사회주의 공업화의 선도지역이었지만 이제는 쇠락한 동북지방(옛 만주)의 재건에 중국정부가 유의하는 것은 균형개발과 함께 이 지역이 조선족 동포들의활동영역이기 때문이다. 조선족 동포들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서도 소수민족이지만 강력한 모국을 가진 유일한 소수민족이다. 동북공정은 동북재건사업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동북공정이 이런 배경에서 출현했다면 우리는 먼저 중국에 대해고구려가 과거사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사실 고조선과 발해를 포함해서 고구려에 대한 중국의 민감성을 환기시킨 데는 우리도 책임의 일단이 없지 않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모 신문사가 주최한 고구려전 이후 중국이 고구려 고분이 밀집한지안(輯安)에 대한 한국인의 통제를 강화했다는 풍문을 들은 바있는데, 수교 이후 동북지역을 빈번히 드나든 한국인 관광객,기업가, 포교사들이 ‘만주는 우리땅’이라고 천박한 졸부티를내 중국의 의구심을 키웠던 것이다. 더구나 요즘은 한류가 한창이 아닌가. 한류를 한·중 민간교류의 한 계기가 아니라 무슨 문화제국주의의 첨병으로 간주한다면 이는 그릇된 생각이다.

한국사회가 먼저 55개 소수민족과 공존공영하고 통일성을 유지하려는 중국의 입장에 깊은 공감을 표하면서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중국사의 틀 안으로만 편입하려는 중화주의적 무감각을 비판하는 유연한 방안이 요구되는 것이다.

우리 또한 동북지방의 역사를 한국사의 틀 안으로만 끌어들이려는 국수적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동북지방은 여진족을 비롯해 무수한 북방유목민족의 공동적 생활장이기도 했기때문이다. 민족주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극복해야 할 방편이다. 동북공정을 계기로 동북지역의 역사를 한국과 중국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함으로써 충돌하는 두 민족주의를넘어설 공동의 학교로 삼는다면 이야말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아닐까.

수교 이후 순풍에 돛 단 듯 발전하던 한·중관계가 상상의 영토분쟁으로 삐끗하는 일은 두 나라 모두의 불행이라는 점을 무엇보다 염두에 두고 존이구동(存異求同)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중관계의 틈 사이로 일본 총리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다짐한다. 상상의 영토분쟁이 아니라 현실상황이다. 일본정부는참으로 염치가 없다. 과거를 잊고 일본과 그래도 우리가 잘 살아야 한다고 전향적으로 생각을 고쳐 먹다가도 이런 일을 또 당하면 참으로 난감해진다. 한국정부는 새해를 맞이하여 일본대중문화에 대한 마지막 금기를 거의 해제했다. 이에 대해 고작 이런 식으로 화답을 하다니.

그런데 무엇보다 독도에 대한 연구가 진작되어야 한다. 해양학교수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는 실효적으로 독도를 지배하고있지만 정작 독도에 대해 무지하단다. 일본은 이 거대한 화산섬과 그 주변 바다에 대해 속속들이 지식을 축적해 놨다니 기념우표를 발행하는 일보다 독도공정(獨島工程)을 발주하는 일이 시급한 것이다.

우익적 경향의 돌출적 발호가 일본우익의 위기라는 점, 한·일시민사회의 교류가 결코 얇지 않다는 점, 그리고 젊은 세대의 국경을 넘은 친교가 한·일 ‘공동의 집’을 건축할 가능성을 넓히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일본사회의 변화를 함께 일굴 일이다.

동아시아의 충돌하는 민족주의들을 넘어서 이 지역에 항구적인평화를 구축할 매개자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이 바로 매개자다.왜 한국이 이 중난한 일을 감당해야 하는가. 역사가 똑똑히 가리키듯이 동아시아의 충돌은 한반도에 가장 큰 재난을 선사해왔기때문이다. 4강이 겨루는 축에 자리한 한반도, 그것도 분단된 한반도가 충돌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분단체제의 근사한 극복만이분쟁의 소실점이다.

종주국의 지위에 있던 고구려와 당은 물론 바다 건너 왜까지 달래는 과정에서 온갖 수모를 딛고 소국주의적 통일을 이룩한 태종무열왕의 겸손한 용기와, 고구려·백제의 유민과 함께 당의 지배를 물리친 제2차 통일전쟁의 영웅 문무왕의 지혜를 남북이 공조하는 평화통일의 새 길에서 어떻게 창조적으로 활용하는가? 이동아시아 평화의 근본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에게 겸허한용기와 융통적 지혜와 창조적 상상력이 지금보다 요구되는 때는없을 것이다.  (인하대교수·‘창작과 비평’주간)

(문화일보 2004-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