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야마 “고구려 고분 벽화 세계문화유산 年內 지정 유력”

일본 유네스코 친선대사 “고구려 고분 벽화 세계문화유산 年內 지정 유력”

 
“북한의 고구려고분 벽화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는 것은 북한의 점진적 개방을 촉진한다는 의미에서도 좋은 일이다. 세계 각국의 학자들이 인류 문화의 자산인 고구려 벽화를 연구하러 북한을 드나들다 보면 북한의 문화도 자연스럽게 개방되지 않겠는가.”

유네스코 친선대사인 히라야마 이쿠오(平山郁夫·74) 도쿄예술대 학장은 15일 “북한처럼 역사가 오래된 나라가 단 한 개의 세계문화유산도 지정받지 못한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라며 “북한 핵문제가 악화되지 않는 한 올해 등록될 확률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표적 화가인 히라야마 학장은 1996년 북한 당국에 고구려 벽화의 세계유산 등록을 권유한 것을 인연으로 10년 가까이 북한의 대(對)유네스코 창구 역할을 맡아 왔다.

8차례 북한을 방문한 그는 사재를 털어 북한 연구진에 벽화 보존에 필요한 장비를 제공하고 일본의 문화재 보존 기술도 전수했다.


― 고구려 벽화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대해 북한은 어떤 자세인가.

“아주 적극적이다. 학계 실무자는 물론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문화성 부상 등 정부 고위관리들을 만났는데 ‘심사에 통과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최근엔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대비해 문화재 관리부서를 내각 직속으로 승격시키기도 했다. 학술문화 분야에서 외부와 교류 협력하려는 의지를 느꼈다.”


―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고구려가 남북한을 포함한 한민족의 역사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설령 중국이 만주에 있는 고구려 벽화를 세계유산에 등록시켜도 고구려 역사가 중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옛 로마제국의 유적이 아프리카의 알제리나 동유럽의 불가리아에도 흩어져 있지만 사람들이 로마제국을 이탈리아 역사로 보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한민족은 이 문제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가 없다.”


― 이 문제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작년 4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몇몇 관리들이 중국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곤 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중국의 지원을 받는 처지여서 공론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고분연구소를 만들려는 계획도 그래서 나온 것 같다. 북한은 고구려 벽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도 현재의 인력이나 기술 수준으로는 완벽하게 보존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중국측에도 세계문화유산 심사를 앞둔 시점에서 역사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양쪽 모두에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며 자제를 당부했다”고 전했다.


―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가능성은….

“6월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리는 총회에는 중국도 만주 일대의 고구려 벽화를 신청해 두고 있다. 세계유산위원회의 21개 참석국가가 고구려 벽화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유네스코 본부도 등록 당위성에 공감하고 있다. 중국이 주최국인 점을 감안할 때 양쪽이 동시에 등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히라야마 학장은 “현실적으로 만주의 고구려 유적이 중국 영토 내에 존재하는 이상 중국의 신청권도 인정되는 게 당연하다”면서 ‘영토’와 ‘역사’를 분리해 바라볼 것을 당부했다.


― 일본 학계가 고구려 벽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그 이유는….

“고구려 벽화는 동아시아의 5∼7세기를 대표하는 고분 문화의 결정판일 뿐 아니라 일본 불교문화의 원류이다. 고대 일본 문화의 ‘선생’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중국은 전란 상태여서 제대로 된 고분벽화가 없었다. 따라서 고구려 벽화를 모른 채 일본 고대사를 연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일본 학계는 고구려 벽화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지원하기 위해 17일 도쿄(東京)에서 ‘고구려와 동아시아’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갖는다. 히라야마 학장은 고구려 벽화의 우수성과 보존 필요성에 대해 기조 강연을 할 예정이다.

“일본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고구려 벽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17일의 심포지엄을 계기로 일본 학계에서도 고구려 벽화의 보존을 돕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 정부가 지원 의사를 밝힌 만큼 영국 정부와 유네스코 등에 협조를 타진하고 한국과 일본 정부에도 도움을 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히라야마 약력▼

△1930년 일본 히로시마(廣島)현 출생
△1945년 중학교 3학년 때 원자폭탄 피폭 경험
△1952년 도쿄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 졸업
△일본의 전통미와 세계 각국의 문화유산을 소재로 작품활동
일본미술원상, 일본예술대상 등 수상
△아시아의 문화유적 보존에 기여한 공로로 2001년 막사이사이상 수상
△한일문화교류회의 일본측 위원장

(동아일보 2004-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