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國史를 가르치지 않는가

얼마 전 중국에서 사람을 태운 인공위성이 발사돼 무사히 기지로 귀환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크게 감동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감동의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일인당 국민총생산(GNP)이 1천달러 미만이면 후진국으로 분류돼야 마땅한 중국이 그와 같은 우주과학을 과시하고 있다면 경제이론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해야 옳은 일이겠지만, 국가경영이 꼭 경제논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당장 시급한 경제성장에 급피치를 올리면서도 그와는 별도로 국가의 미래를 웅비케 하려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은 우주과학만이 아니다. 똑같은 맥락으로 1995년부터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대장정을 시작하면서는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하고자 하는 작업을 구체화했다.

일본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청소년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기 위한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그런 역사인식으로 쓰인 역사교과서(비록 검인정이지만)를 우리는 왜곡된 교과서라고 비난하면서 개정해주기를 강력히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 입맛에 맞추어 왜곡된 교과서를 고쳐주기를 기대한다면 그 또한 망상에 불과하다.

이런 주변국가의 역사인식에 비한다면 우리는 제 나라의 국사교육에 관심을 두기보다 오히려 고사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국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중학교에서도 국사과목이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다. 고등학교에서는 국사가 사회과목에 포함되면서 선택과목으로 밀려났다. 결국 우리의 청소년들은 국사를 한 줄 읽지 않고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행정·사법·외무고시에도 국사과목이 없으니 국사를 모르는 사람들로 공직이 채워질 위험에 처해 있다.

세계에서 제 나라의 국사를 가르치지 않는 나라가 있는가. 불행하게도 우리만이 국사를 가르치지 않는 나라로 전락했다. 이에 대한 정부 고위인사의 해명은 우리를 더욱 참담하게 한다. '수능시험에 시달리는 고교생들에게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한 과목이라도 더 줄여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 기막힌 대답도 있다.

'국사를 가르치면 국수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길러주게 돼 세계화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형편없는 나라라도 그렇지, 이런 사람들에게 청소년들의 교육을 맡겨도 되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판국인데도 정부에서는 2만달러 시대를 열어가자고 열을 올린다. 결단코 말하거니와 지금과 같이 천박해진 세태로는 2만달러 근처에도 갈 수 없다. 이 참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수출인가, 외자 유치인가, 정치개혁인가. 그 어느 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세계은행 예측에 따르면 2020년이면 중국 경제가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한다. 그 때 한국은 세계 최강인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낀 샌드위치가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도 이미 나와 있다. 그 2020년 무렵에 한국을 이끌어갈 30대의 핵심적인 인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바로 초등학교 상급반 소년들이다. 그 소년들에게 국사를 가르치지 않고, 민족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지 않고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도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만저만한 착각이 아니다.

정부가 지금 당장 서둘러야 할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정신적 근대화에 나서는 일이다. 오직 그 하나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진 이 정신적 공황에서 헤어날 수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는 우리 것을 내다버리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을 뿐, 우리의 본바탕에 흐르는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논증하는 일에 너무도 소홀했다. 이른바 세계화라는 외형에만 요란을 떨었지 국가의 웅비에 대비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할 궁리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래도 국사(國史)를 가르치지 않을 것인지, 대답을 듣고 싶다.

(중앙일보/신봉승 극작가·예술원 회원 2004-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