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美와 무제한 전쟁…경제·군사력 곧 따라잡는다"

“중국은 불공정 경쟁자이고, 미국 실업의 주요 원인이라는 인식이 미국 내에서 퍼져가고 있다. ‘이대로 가만있어선 안 된다’는 이익집단들의 요구를 부시 행정부가 주체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중국이 미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하려는 유혹에 넘어가면 매우 파괴적인 상황이 올 수 있다.” 미국의 포브스(Fobes)지 지난달 22일자의 진단이다.


중국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지난달 초 워싱턴을 방문, 급한 불을 껐다. 위안화(元貨) 평가 절상과 무역 불균형(중국의 연간 대미 무역흑자는 1200억달러) 시정을 바라는 미국의 요구에 ‘성의’ 표시를 한 것이다.

하지만 양국의 물밑 기류는 심상치 않다.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달 15일 중국산 철강관에 대해 앞으로 3년 동안 수입 규제 조치를 부시 대통령에게 권고했다. 국제무역위원회는 “상하수도 설비에 쓰이는 중국산 철강관 수입이 68%나 늘어나 국내 생산업체와 경쟁상품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면서 “수입규제 조치 시행 첫해에는 수입 쿼터 1만4324t을 넘는 수입물량에 대해 5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요구했다. 부시는 향후 2개월 이내에 중국산 철강관에 대한 수입 규제의 종류를 결정해야 한다.

도널드 에번스(Evans) 미 상무장관이 지난해 10월 말 중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에번스 장관은 무역불균형을 거론하면서 “미국은 중국의 곳간에만 부가 쌓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원 총리는 이에 대해 “중국이 흔들리거나 무너지면 다른 나라들도 무너질 수 있다”고 점잖게 으름장을 놓았다. 중국이 미국의 ‘명줄’을 쥐고 있다는 이 얘기는 빈말이 아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에 수출해 벌어들인 엄청난 액수의 달러를 대부분 미국 재무부 채권을 사들이는 데 쏟아 부었다. 중국이 정확한 통계는 밝히지 않고 있지만, 외환 보유액 3800억달러의 상당 부분이 미 정부 채권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이 지난 18개월 동안 1000억달러어치의 미 정부 채권을 샀다는 설도 있고, 하루 평균 10억달러씩 미국 정부 채권을 사들인다는 설도 있다.

분명한 것은 중국이 갖고 있는 미국 정부 채권을 투매하면 달러화가 폭락하고, 미국에 전면적인 금융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그만큼 미국 경제의 안방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셈이다. 우선 미국의 군사력을 최소한으로 ‘비토(veto)’할 수 있는 군사력은 유지하되, 나머지 역량은 경제에 집중하는 국가 전략을 중국은 택하고 있다.

이 같은 무역·경제 경쟁의 건너편에는 동아시아 지도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영향력 경쟁이 있다. 제임스 프리첩(Przystup) 미 국방대학 교수는 “미국이 이라크에 몰두해 있는 동안 중국이 아시아에서 벌인 활약상은 눈부시다”고 말했다. 원자바오는 작년 말 발리에서 아세안(ASEAN) 정상들과 상호친선조약에 서명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2010년까지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기 위한 전초 단계를 닦았다. 중국과 아세안 간 무역액은 수년 내 미국과 아세안의 2002년도 무역액 1200억달러를 능가할 전망이다. 중국과 일본 간 무역액은 2003년 상반기 동안 전년에 비해 34%가 늘어났고, 한국의 경제적 무게중심은 이미 중국 쪽으로 넘어갔다. 더구나 중국은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마저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샬린 바셰프스키(Barshefsky) 전 무역대표는 지난 11월 중국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중국의 출현, 중국의 점증하는 역내 정치적 비중은 미국 정부 인사들에게 경보음을 울리고 있다”면서 “아시아에서는 분명히 권력의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의 군사경쟁도 만만치 않다. 아직은 중국이 미국을 감히 대적(對敵)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중국은 한 발짝 한 발짝씩 전진하고 있다.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MD)’에 맞서기 위해 중국은 이미 나름대로의 MD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사거리 8000㎞로 미국 서부까지 사정권 안에 둘 수 있는 둥펑(東風) 31호 미사일에, 우주에서 12개 이상으로 분리되는 탄두, 이른바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 미사일(MIRV) 사업을 상당 정도 진전시켰다.

둥펑 31호를 개량해 잠수함에서 발사가 가능하도록 만든 쥐랑(巨浪) 2호, 사거리를 1만2800㎞로 크게 늘린 둥펑 41호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 정찰위성 ‘KH11’이 크기 15㎝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으나, 중국의 정찰위성 ‘ZY2’도 20㎝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40년 만인 2002년 8월, 극동지역에서의 전쟁 발발을 가상해 20만명의 병력이 참여한 합동군사훈련을 벌였다. 러시아는 이미 대만 독립을 막으려는 중국에 대한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미국의 아시아 영향력을 막기 위한 상하이 조약에 2001년 6월 중국과 함께 서명했다. 중국 최고 군 수뇌부는 “대만 독립은 전쟁을 의미한다”면서 “이는 13억 인민의 뜻이며, 이를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중국에 대한 미국 내 보수파들의 경계는 대단하다. 특히 츠하오톈(遲浩田) 전 국방부장이 수년 전에 한 말―“미국과의 전쟁은 불가피하다.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 관건은 중국 군대가 전쟁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1년, 2년 또는 그 이상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을 이들은 잊지 않고 있다. 국무부 관리 출신으로, 현재 ‘정확한 미디어(Accuracy in Media)’라는 단체의 부소장을 맡고 있는 윌슨 루콤(Lucom)은 “중국은 미국에 대해 비밀리에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부시 대통령은 이 같은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 보수단체가 운영하는 ‘NewsMax.com’이란 웹사이트는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기 3년 전에 중국이 만든 ‘초한전(超限戰·Unrestricted Warfare·무제한 전쟁)’이라는 제목의 군사 교범에 주목하고 있다. 이 교범에는 ‘해커들의 침입이든,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주요 폭격이든, 빈 라덴에 의한 폭탄 공격이든, 이런 모든 것들은 미군이 이해하는 폭을 넘어선다”는 구절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테러리즘을 여러 수단 중 하나로 여기고 있으며, 중국에 우호적인 테러리스트 그룹들이 미국에 대한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고 미국의 보수파들은 주장한다. ‘초한전’을 쓴 2명의 중국 대령은 9·11 후 중국에서 영웅으로 간주되고 있으며, 중국의 국영 선전 기관은 9·11 테러를 ‘거만한 국가’의 콧대를 꺾는 공격임을 강조하는 책과 필름, 비디오 게임 제작에 돈을 쏟아 붓고 있다는 것이다. ‘초한전’은 미국을 중국의 주적(主敵)으로 간주하고 불법 이민자 침투, 주식 시장 교란, 대량 살상무기 이용 등 갖가지 전략 전술을 담고 있다고 미 보수파들은 우려하고 있다.

‘세계체제론’을 주창한 석학이자 동북아시아 전문가인 이매뉴얼 월러스틴(Wallerstein) 교수는 “중국은 국가통합 유지, 군사력 증강, 세계 시장에서의 역할 증대, 대만 재합병 등 네 가지 우선순위를 갖고 있다”며 “이 네 가지 영역에서 중국은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지 11·12월호의 주제는 중국의 외교와 경제 부흥을 다루는 ‘중국 이륙하다’였다.

(조선일보 20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