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역사’ 시민이 살린다

고구려 유적 출토 아차산, 구리시장이 공원조성 퇴짜, 시민모임 “재단설립 추진”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와 비난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물론 자치단체장마저 외면하고 있는 고구려 유적지 되살리기에 시민단체가 팔을 걷고 나섰다.

경기 구리·남양주 시민모임(회장 안승남)은 지난달 28일 고구려 유적이 대량으로 출토된 구리시 아차산에서 ‘고구려 역사문화재단’ 설립을 위한 발기인 모임을 연 데 이어, 오는 16일 구리경찰서 앞 광개토대왕 동상 앞에서 2차 발기인 모임을 열기로 했다.

이는 1998년 아차산 일대에서 고구려 유물이 대량으로 출토된 뒤 민선2기 시장을 지낸 박영순 전 구리시장이 일부 도로를 ‘광개토대로’로 이름을 붙이고 교문2동에 광개토대왕 동상을 만드는 한편 아차산 9만6천여평의 터에 고구려 테마공원 조성을 추진했지만, 2002년 7월 새로 취임한 이무성 구리시장이 이를 백지화시킨 데 따른 것이다.

이 시장은 취임 직후 “구리는 조선시대 왕릉군인 동구릉 등 왕릉군이 있어 조선왕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이라며 고구려 역사 관련 사업추진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구리시는 서울시 등 주변 지역과의 경계표지판과 육교 등에 붙은 고구려 관련 홍보문안을 모두 지웠으며 광개토대왕로도 장자대로로 이름을 바꿔, 전임 시장의 ‘업적 지우기’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시민모임은 “아차산에서는 이미 15개의 고구려 보루성(큰 성을 방어하기 위해 주변에 쌓은 조그마한 성)이 발견됐고 1500여점의 유물이 대량 출토됐는데도, 자치단체장의 아집과 정부의 무관심으로 우리의 소중한 유적과 역사가 방치되고 있다”며 “어쩔 수 없이 시민단체가 고구려 역사와 유적 보호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안 회장은 “고구려 문제는 민선시장 개인의 역사인식이나 정부의 안이한 역사관에 따라 좌우되어선 안된다”며 “민족 모두가 공유하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를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확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고구려역사문화재단(준) 02-3776-0830.

(한겨레신문 2004-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