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없이 Korea 없다

일본 사이타마현에 고마역이라는 시골 전철역이 있다. 도쿄에서 북서쪽으로 50분 정도 가는 거리다. 역 광장에 나서면 홀연히 한국의 장승이 나타난다. 높이 4m 가량의 당당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일본 속의 한국이다. 이름부터 고마(高麗)역이다. ‘고마(고려)~’라는 이름은 주변의 언덕과 강, 마을, 학교, 왕릉 앞에 모두 붙어 있다. 유명한 고마진자(高麗神社)로 가는 길목이다.

신사의 안내문에 따르면 고려(고구려를 가리킴)는 중국문화를 받아들여 강대한 선진국을 이룩했고 일본문화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으나, 668년 당에 의해 망했다. 고구려의 많은 왕족ㆍ귀족이 망명해와 황무지였던 주변을 개간하고 산업을 일으키니, 그들의 공적을 기려 세운 것이 고려신사다.

일본의 '고려신사' 역사 증언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기 변방사처럼 왜곡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추진하고 있다. 3조원이나 투입시켜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시키는 한편, 동북아의 ‘과거’를 장악하려 하고 있다. 과거를 장악하는 자가 미래경쟁에서도 승리자가 된다. 우리는 자칫 역사에서 기억상실증 환자로 취급될 민족적 위기를 맞고 있다. 고구려라는 과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남북한이 중국과 벌이는 전쟁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진기한 전쟁이다. 그 역사전쟁, 뿌리전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오래 전 일본 땅에 세워진 고려신사는 1,300년 전 동북아의 정치 지형을 증언해 주는 확실한 하나의 기념물이다. 역사의 고비마다 껄끄러운 일본의 신사와 장승도 우리 편을 들고 있으니 묘한 구석도 없지 않다. 신사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는 당에 의해 패망했으나 강대한 선진국이었다. 역 광장의 눈이 부리부리한 장승들은 또한 고구려가 중국의 변방이 아니라, 고조선 이래 독자적 문화를 지켜온 당당한 주권국가였음을 웅변하고 있다.

고구려 성 중에 양만춘이 성주였던 안시성이 있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쟁의 천재 당태종은 대군을 거느리고 직접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그러나 요동만 부근의 안시성 전투에서 갖은 고생을 겪은 후 원정을 포기하고 말았다. 당태종도 말했듯이, 병법에 따르면 군민(軍民)이 일체가 되어 있는 안시성은 ‘치지 말아야 할 성’이었다. 안시성 뿐 아니라, 지금 중국이 시도하고 있는 고구려사 왜곡 자체가 치지 말아야 할 성을 공격하는 것처럼 무모해 보인다.

사실(史實)과 다르거니와, 동북아 관련국의 반발도 거세기 때문이다. 남북한 학자는 물론 동북아 관련국인 일본ㆍ러시아의 학자들도 중국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로자 자루가시노바 등 러시아 학자들의 성명서는 ‘고구려 사적지가 중국 안에 있을지라도 역사적으로 엄연히 한민족 조상이 건국한 나라이므로, 중국 고대국가의 일부라는 주장은 절대 지지할 수 없다’고 당연하고도 명료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중국이 새삼 고구려사를 빼앗으려 하는 것은, 반면 우리는 기필코 지키려 하는 것은, 동북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점차 커지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한국을 동북아 물류의 중심국가화 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반도를 둘러싼 서해ㆍ동해는 유럽의 지중해와 유사하다. 냉전시대 후 경제교류가 늘어나고 있는 남북한과 중국, 일본, 러시아가 모두 이 바다를 지나야 한다.

中에 고구려史 뺏겨선 안돼

북한과 중국이 함께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남북한 당국과 학자들이 힘을 합쳐 고구려사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고구려 없이는 Korea도 없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틈에서 강인하게 생존해온 반도국민 특유의 저력으로, 고구려사가 ‘치지 말아야 할 성’이었음을 보여주자. 약점은 국토가 분단되어 대응력이 분산되는 점이다. 분단도 60년이 다 돼 간다. 한중 역사전쟁은 분단의 괴로움과 통일의 시급성을 아프게 일깨워 주기도 한다.

(한국일보 20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