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에 두고도 보지못한 '고구려'

[긴급기획 1] 중국, 한국답사팀 관람 원천봉쇄

(중국 정부가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왜곡, 편입시키려고 해 한중 양국간에 갈등이 야기되고 있으며 자칫 외교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마저 예고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해 12월 27일~30일 3박4일 일정으로 고구려연구회 답사팀과 함께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집안과 환인을 현지취재하고 돌아왔다. 취재진은 현지에서 중국이 고구려사를 편입하기 위해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지 등 현지사정과 우리측의 대책 등을 듣고 이를 3회에 거쳐 긴급기획물로 내보낼 계획이다....편집자 주)

"어, 저것 봐! 누가 우리 답사팀을 캠코더로 촬영하고 있다."
"중국 공안원(경찰)들 같아. 고구려 유적도 못 보게 막더니 이렇게 감시나 하고…"


지난해 12월 29일 아침 10시께 중국 길림성 집안(集安) 취원호텔 앞. 고구려연구회(회장 서길수)의 제9차 고구려 유적답사팀이 탄 30인승 버스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4차선 도로 건너편의 흰색 승용차 안에서 중국 공안원들이 답사팀이 탄 버스를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다. 앞 좌석에 탄 사람은 캠코더로, 뒷 좌석에 앉은 사람은 스틸 카메라로 작업 중이었다. 영하 10도 정도의 추위로 버스 창문에 성에가 끼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똑똑하게 보였다.

마치 형사들이 범죄증거 수집을 위해 채증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답사팀이 탄 버스는 환인(桓仁)을 향해 떠났다. 흰색 승용차는 30분 정도 계속 따라왔다. 이들은 집안시 현지 공안원도 아닌 길림성 정부 차원에서 파견된 공안원들로 알려졌다.

이들 때문에 칠성산 211호 무덤, 천추릉 등을 지날 때 답사팀은 버스에서 내릴 수도 없었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잠시라도 내려서 고구려 고분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을 터인데 말이다.

이번 고구려연구회 답사팀은 중국 정부가 자국 안의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신청하기 위해 올해 초 집안과 환인(桓仁)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지난 9월 세계유산위원회의 현지 실사를 받고 난 뒤 처음으로 찾은 한국 단체 답사팀이었다.

중국 정부가 한국 답사팀을 환영할 까닭은 없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아니 싸늘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첫날부터 답사팀이 주요 고구려 유적을 관람하는 것 자체를 봉쇄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고구려사 문제를 얼마나 정치적으로 보는지, 한국의 행동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랴오닝성 정부 차원서 고구려유적 관람 봉쇄

한국언론에 부는 고구려 열풍

새해 첫날부터 한국 언론에 고구려 열풍이 불고 있다.

'2천년을 지킨 성채…고구려는 살아있다'(<경향신문> '한국사속의 만주'시리즈)

'민족의 뜨거운 심장에 누가 비수를 꽂으려 하는가'(<한국일보> '한중 고대사 전쟁'시리즈)

'꿈틀거리는 고구려혼…1400년 시간 멈춘듯'(<동아일보> '고구려를 다시보자'시리즈)

1월1일자 주요 국내 일간지의 고구려 관련 시리즈의 제목이다. <조선일보>의 경우 2면에 '고구려의 길'이라는 김지하 시인의 시를 싣고 이어 A-20면에 '비상하는 중국, 대제국의 부활을 꿈꾼다'라는 중국 관련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 기사도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 등 최근 강화되고 있는 중국의 민족주의 열풍의 현황을 분석하는 기사로 보인다.

각 신문들이 준비한 기획 기사의 규모도 일부는 10회에 이르는 등 상당히 큰 기획이다. 이들 신문들이 나선이상 국내 다른 언론사들도 관련 기획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12월9일 한국 고대사학회 등 한국사 관련 17개 학술단체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중국 역사학계와 '전쟁'을 선언했다. 중국의 <광명일보> 등 주요 언론들은 지난해부터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기사를 연속적으로 싣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양국 언론사 사이에도 고구려사를 놓고 취재전쟁이 불붙은 전망이다. / 김태경 기자
고구려연구회 답사팀은 지난 27일 중국 랴오닝성 선양에 도착했다. 애초 계획은 이날 오후 선양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고구려의 백암성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선양에 도착한 직후 취소됐다.

서길수 고구려연구회 회장은 "우리 답사팀이 오니까 랴오닝성 정부 차원에서 대책회의를 했던 모양"이라며 "성 정부에서 백암성은 미공개 지역이기 때문에 한국 답사팀이 갈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고 말했다.

아직도 중국에는 미개방 지역이 있다. 중국 정부의 허가 없이 이곳에 갔다가 붙들리면 상당한 법적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아무 제재 없이 백암성을 둘러봤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날은 관람을 불허한 것이었다.

백암성의 동북쪽 성벽은 압록강 이북 지역의 고구려 성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특히 3개의 치(雉·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성벽 밖으로 군데군데 내밀어 쌓은 돌출부)가 완벽하게 남아있다. 따라서 고구려의 축성법을 잘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백암성 관람 불발은 '시련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답사팀은 이날 밤 10시께 선양에서 열차를 타고 통화까지 갔다. 애초 예정대로라면 28일 환인(桓仁)에 있는 고구려의 첫 도읍지 오녀산성을 관람할 계획이었다. 광개토태왕비에는 고구려의 시조 추모(주몽)왕이 '비류곡의 홀본 서쪽 산 위에 성을 짓고 도읍을 세웠다'고 기록했다. 학자들은 바로 이곳이 환인에 있는 오녀산성이라고 본다.

(흔히 광개토'대왕'이라고 하는데 광개토'태왕(太王)'이 맞다. 중국은 최고 군주를 '황제', 일본은 '천황'이라고 불렀지만 고구려는 '태왕'이라고 일컬었음을 여러 금석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자 주)

그러나 통화에서 현지 여행사의 버스에 타자마자 '청천벽력' 같은 발표가 있었다. 현지 재중동포 여행사 김송학 사장은 "오녀산성으로 올라가는 길이 얼어붙어서 관람할 수 없다는 전갈이 왔다"며 "불과 얼마 전에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아무 문제없이 안내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번 답사팀은 관람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미 현지 여행사는 오녀산성 관람비를 납부한 상태였지만 관리사무소는 갑자기 전화를 걸어 '돈을 다시 찾아가라'고 했다 한다.

서길수 회장은 "지린성 성장이 성 관광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우리 답사팀의 고구려 유적 관람을 전부 금지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오늘 오녀산성 관람은 포기하고 '집안'으로 간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고 말했다. 그는 의지를 다졌지만 얼굴 표정은 어두워졌다. 자칫하면 '고구려 답사팀'이 아니라 '단순 관광객'으로 전락할 형편이었다.

28일 오전 숙소로 예약한 집안 시내의 취원 호텔에 도착하자 중국 공안원들이 들이닥쳤다. 답사팀의 여권을 일일이 검사하더니 일부 답사팀원의 경우 묵고있는 방안까지 뒤졌다. 이날 나타난 공안원들은 집안시 공안국 소속이 아닌 지린성 소속이었다.

집안시 공안국에게 맡기면 아무래도 시 정부 수입의 최대 원천인 한국인들을 너그럽게 처리할까봐 성 정부 차원에서 직접 파견한 모양이었다.

곳곳에 사진촬영금지

현지 여행사 쪽에서 시 공안국과 관광국 등에 수없이 전화를 하더니 조금 양보(?)를 받아낸 모양이었다. 내용은 광개토태왕비와 장수왕릉, 국내성 등은 관람 가능하지만 사진촬영 절대 금지, 환도산성 및 산성하 무덤 떼 등은 버스 안에서만 둘러볼 것, 그리고 집안 박물관은 관람할 수 없다는 것 등이었다. 애초 답사팀이 중국에 온 목적의 절반도 충족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원래 집안은 지난해 초부터 10월 중순까지는 대대적인 고구려 유적지에 대한 발굴 보수공사로 외국인 출입이 금지됐다. 그러나 이후에는 개방된 상태였다.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중국이 고구려사가 자기 것이라면 뭐가 그리 겁이 나는가? 왜 이렇게까지 관람을 막는지 이해가 안된다"며 혀를 찼다. 특히 아쉬운 것은 집안 박물관을 관람할 수 없는 것이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초 6개월간 대대적으로 고구려 유적을 발굴·보수하면서 새로 발견한 유물을 대거 전시해 놓았기 때문에 꼭 봐야 할 곳이었다.

중국 정부가 밝힌 박물관 관람 불허 이유는 '건물 안에 일부 물이 새기 때문에 보수 공사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 전 날인 27일에도 아무 문제없이 관람이 이뤄졌고 28일은 일요일이라 중국인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한국 답사팀의 관람을 막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서길수 회장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지역의 박물관에서 물이 샌다면 큰 문제다. 유네스코에 공식 문제제기 하겠다"고 항의하자 다시 돌아온 대답은 "박물관 직원들이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어 문을 열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1시간 넘게 항의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28일 오후 출발하는 답사팀 버스 안에는 리웨이라고 이름의 40대의 집안 박물관 여성 가이드, 현지 재중동포 공안원까지 버스에 탑승했다. 앞으로 한국 단체 관광객들은 반드시 집안 박물관의 전문 가이드가 따라붙기로 했다는 설명까지 곁들여졌다. 물론 이들의 목적은 한국 단체 관광객들에 대한 감시일 것이다.

장수왕릉(장군총), 광개토태왕비에 도착하자 6~7명의 사복을 입은 공안원들이 답사팀을 밀착해 따라붙었다. 이들의 감시 때문에 몰래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더구나 유적을 지키고 있는 셰퍼드들도 한국인을 알아보았는지 사납게 짖어대 분위기만 어수선했다. 한 현지인은 "경비견이 아주 많다. 장수왕릉에 2마리, 광개토태왕비에 4마리, 다섯투구무덤(오회분) 2마리, 박물관에 2마리가 지킨다"고 귀뜸해 줬다.

다섯투구무덤(오회분)의 4호묘는 원래 30평 정도의 관람실에서 무덤 내부에 설치한 카메라로 벽화를 보여주도록 되어있지만 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환도산성과 산성하무덤떼는 차에서 내려보지도 못하고 버스 안에서만 관람이 허용됐다. 영하의 날씨에 성에가 잔뜩 낀 버스 창문으로 고구려 유적을 살펴봐야 하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혹시 자료 독점 하기 위해?"

원래 세계문화유산의 기본정신은 '어느 종족이 창조하였더라도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면 이를 공동으로 지키고 관리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기본정신'이라는 것에 바탕을 둔다. 따라서 세계문화유산은 누구에게나 공개하고 관람시켜야 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런 기본적인 원칙부터 무시했다.

이번 답사팀 가운데는 문화재 보존학과 교수와 전각 전문가 등 이 방면의 전문가들이 끼여있었다. 이들은 고구려 유물의 보존이나 복원 상태를 보면 전문가적인 판단을 내리고 지적할 수 있다. 즉 중국 정부는 한국의 전문가들이 와서 자신들의 고구려 유적 복원에 대해 혹시 비판을 제기할까봐 아예 관람을 '원천봉쇄'했을 수 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모든 고구려 유적지마다 '請勿拍撮 謝謝協助'(사진촬영 금지, 협조바랍니다)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것이었다.

현지 재중동포 가이드는 12월 26일부터 갑자기 실내는 물론 실외에 있는 그 어떤 고구려 유적도 사진촬영이 금지됐다고 전했다. 비디오 촬영은 예전부터 금지됐지만 사진촬영 금지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위반하면 벌금이 1만 위안(150만원)에 카메라까지 압수한다고 했다.

단국대 동양사 연구소 박찬규 박사는 "혹시 중국정부가 자료를 완벽하게 독점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박 박사는 "올 여름에 중국 시안에 있는 진시황제의 지하궁전인 병마용(兵馬俑)을 보고 왔다"며 "병마용은 실내에 있지만 스틸 사진은 물론 비디오까지 마음대로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외부에 있는 장수왕릉이나 광개토태왕비의 사진도 못 찍게 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봉쇄"라고 말했다.

병마용의 경우 이전에는 내부에서 사진 촬영이 절대 금지되었고 만약 사진촬영을 하려면 500위안 정도의 돈을 내고 지정된 장소에 한해서 촬영이 가능했다. 이랬던 병마용도 완전히 사진촬영 금지가 풀렸는데 바깥에 있는 고구려 유적은 사진 촬영을 완전 금지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혹시 한국인들이 집안과 환인의 유적 사진을 찍은 뒤 보수가 잘못된 곳이나 미비한 점이 있으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까봐 이를 막기 위한 조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금지조치가 고구려연구회라는 중국정부 입장에서 볼 때 대단히 껄끄러운 단체에만 한정된 것인지 아니면 모든 한국 관광객들에게 그대로 적용될지는 현재로서는 확실치 않았다.

아무튼 이는 올해 6월 중국 쑤저우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의 등재 여부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29일 답사팀은 환인의 오녀산성으로 향했다. 이미 중국 정부의 불허 방침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심정으로 향했다. 한켠에는 '혹시 현지에서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이 있겠지'하는 일말의 기대감도 깔려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중국 정부의 설명과는 달리 길은 얼어있지도 않았다. 불과 하루 전에도 아무 문제없이 오녀산성 관람이 이뤄졌다고 한다.

그러나 고구려연구회 답사팀의 희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오녀산성을 1천m쯤 남겨놓은 지점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답사팀은 손에 잡힐 듯이 서있는 오녀산성을 바라보면서 멀리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마이뉴스 20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