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축제와 놀이

고구려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유명한 인물이 누구이며, 언제 어떤 나라와 싸워 이겼고, 얼마나 큰 땅을 차지했는가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고구려 사람들은 오로지 훈련에만 힘을 쏟고 전쟁만을 하며 살았을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았겠지요. 고구려 사람들도 평상시에는 다양한 문화 생활과 놀이를 즐겼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축제를 좋아했습니다.

10월에 열리는 가장 큰 축제 '동맹'

고구려에서 1 년 중 가장 큰 축제는 동맹으로, 해마다 10월에 열렸습니다.

이 축제는 유화부인과 추모왕을 신으로 모시면서, 시조의 탄생을 재현하는 경건한 의식을 왕이 직접 참여해 진행했습니다.

이 날은 왕ㆍ귀족ㆍ일반 백성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온갖 놀이를 즐깁니다.

신과 하나가 돼 신명 나게 즐기는 것입니다.

조선 시대 양반은 엄숙한 제사를 지낼 뿐, 마을 제사 등에는 뒷짐을 지고 돈이나 몇 푼 내어 주는 데 그쳤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일은 무척이나 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인은 신분과 남녀의 구분 없이 밤늦도록 함께 술 마시고 춤과 노래를 즐겼습니다.

전쟁이 잦은 나라인 만큼, 아래와 위의 일체감이 무엇보다 필요했습니다.

즉, 축제가 단결을 이끌어 내는 중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고분 벽화에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많아

고구려 사람들은 동맹 축제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밤늦도록 노래하고 춤추며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고구려의 노래 가운데 지금 전하는 것은 황조가와 인삼노래 정도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많은 노래가 연주되었습니다.

동맹에서 의식이 진행될 때는 잔잔하면서도 신을 부르는 음악이 연주됐습니다.

또 함께 춤추고 노래할 때에는 격정적인 음악이, 군대 행진 때에는 씩씩하고 웅장한 음악이 연주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회분 5호묘 천장 네 벽에는 8 명의 신선이 그려져 있는데, 이들은 뿔피리ㆍ횡적ㆍ장구ㆍ거문고ㆍ퉁소 등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안악3호분에는 음악에 맞추어 탈춤을 추는 사람도 그려져 있습니다.

무용총 역시 무덤 주인이 유희 모습을 보는 장면이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덕흥리 고분의 경우 주인공이 업무를 볼 때, 뒤에서 완함과 피리ㆍ나팔을 연주하는 사람이 함께 보입니다.

이 밖에 장천1호분에는 귀부인이 야외에서 남자와 만나 함께 거문고를 연주하고 춤추는 장면이 보여집니다.

당시 당나라와 일본에서는 고구려의 음악을 궁중 연회에서 연주했고, 고구려의 춤과 노래도 당나라 귀족층에서 크게 유행하기도 했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한 해가 시작될 때 왕이 신하들과 함께 패수로 나가 사람들이 모여 놀이하는 것을 구경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 돌을 던지는 돌싸움을 했습니다.

서로의 경쟁을 부추기면서도 화해를 도모하는 이 돌싸움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전국에서 볼 수 있는 놀이였습니다.

씨름ㆍ겨루기ㆍ축국ㆍ윷놀이 등 즐겨

고구려의 놀이 가운데에는 씨름이 있습니다.

각저총과 장천1호분 벽화에 보이는 씨름은 샅바의 형태는 오늘날과 매우 비슷합니다.

무용총과 안악3호분에는 겨루기를 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태권도의 조상격인 수박이라는 무예를 겨루는 것입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또 축구와 비슷한 축국이란 놀이를 즐겼습니다.

한편, 장천1호분 벽화에는 고구려인의 야외 활동 장면이 나옵니다.

원숭이를 부리며 놀기ㆍ재주꾼이 수레바퀴를 던지며 놀기ㆍ춤추고 연주하기ㆍ말 타며 사냥하기ㆍ씨름ㆍ술래잡기 등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팔청리와 수산리 고분 벽화 등에서는 높은 나무다리에 올라 춤추기ㆍ칼 재주 부리기ㆍ여러 개의 막대와 공을 엇바꾸어 던져 올리며 받기 등 서커스를 하는 사람들의 장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육체적 놀이 외에도 고구려 사람들은 바둑ㆍ주사위ㆍ윷놀이 등 머리를 쓰는 오락을 즐겨 했습니다.

특히 윷놀이는 우리 겨레 고유의 놀이인데, 놀이판과 윷가락은 많은 상징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윷놀이가 우리 전통 사상의 원형이 담긴 보물이라고 말합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잦은 전쟁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며 살 줄 알았습니다.

특히 상하와 남녀 구분 없이 함께 축제를 즐기는 고구려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크게 배워야 할 점이겠지요.

(소년한국일보 200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