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주변 나라를 하나로 통합했을까?

포용 정책으로 자연스럽게 흡수

장천1호분 벽화. 왼쪽에 말 꼬리를 붙잡고 있는 코가 큰 사람
역시 외국 출신이다.

고구려의 첫 임금인 추모왕은 생전에 말갈, 비류국, 행인국, 북옥저 등을 공격하여 이들의 항복을 받아 냈습니다. 또 유리명왕은 선비와 양맥을, 3대 대무신왕 때는 개마국과 구다국, 낙랑국 등을, 6대 태조대왕 시기에는 동옥저, 갈사국, 조나, 주나 등을 멸망시켰습니다. 고구려가 빠르게 주변국을 통합해 가는 과정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고구려가 주변국을 정복해 하나로 통합한 비결에 대해 알아 보겠어요.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한 가지를 생각해 볼까요? 고구려가 다른 나라를 공격해서 항복을 받기만 하면, 그 나라 전체가 고구려 영토가 되는 것일까요? 다시 말해 항복하기 전까지 전쟁을 했던 나라 사람들이 고구려에 쉽게 복종할 수 있었을까요?

어떤 나라를 정복했다고 해서 무자비하게 그들을 억압하고 물건을 빼앗기만 한다면, 그들은 분명 다시 독립하기 위해 저항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정복한 국가도 계속해서 군대를 보내 그들과 싸워야 할 테니까, 결국에는 이익을 얻지 못 할 것입니다.

각저총 벽화의 씨름도. 씨름을 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코가 유난히 큰 것으로 보아 중앙 아시아
에서 온 사람이다.
고구려는 정복한 지역을 군, 현, 또는 성읍으로 삼아 관리를 보내거나, 그 곳 사람들을 고구려 관리로 뽑아 다스리게 했답니다. 처음 고구려의 지배를 받게 되는 곳의 경우, 세금을 크게 줄여 주고 그 지역 지도자들에게 벼슬도 주는 정책 등을 썼습니다. 이와 함께 축제, 종교 행사, 다른 나라와의 전쟁 등에 참여토록 함으로써 이들에게 같은 고구려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고구려가 초기에 통합한 나라 가운데는 언어를 비롯해 문화나 풍습은 같지만, 나라의 지배자만 다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인이라는 생각을 갖는 데 큰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집단의 출신인가까지 잊을 수는 없겠지요. 때문에 이들은 고구려 내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계속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세력 가운데 고구려 초기에 두각을 나타난 5 개의 집단이 있었습니다. 흔히 부(部)라고 부르는 이들은 고구려 왕을 배출하는 계루부, 비류국의 후예인 비류나부, 2세기 후반부터 한동안 고구려 왕비를 배출했던 연나부, 그리고 환나부와 관나부 등입니다.

중앙 정부나 지방 관청에서 일하게 된 각 부 지도자들은 고구려 귀족 신분을 갖게 되면서 점차 고구려에 충성을 하게 됩니다. 각 부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다른 부의 구성원과 다르다는 생각도 점차 약해지게 됐지요. 결국 3세기 말에 이르면 이들 5 부도 사라집니다. 5 부는 나중 지역의 명칭으로만 남게 됩니다.

고구려는 커다란 용광로처럼 작은 나라에 살았던 사람들을 고구려인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에 따라 인구도 늘고 영토도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비족처럼 유목이나 수렵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대부분의 고구려인들과는 생활 습관이 많이 달랐습니다. 이들이 고구려인이 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구려는 이들에게 무리하게 고구려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습성을 그대로 유지하게 했지요. 가벼운 세금만 받거나 때로는 물자도 공급해 주면서 이들을 고구려라는 큰 울타리에 넣어 두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나면 그들을 용병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보이는 씨름하는 사람은 코가 유달리 큽니다. 이 사람은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온 백인이 분명합니다. 고구려에는 황하 일대에서 살았던 한족 등 다양한 종족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오거나, 굶주림 등을 피하고자 스스로 고구려에 귀순해 오는 사례가 많았답니다. 이들을 처음에는 한 곳에 모여 살게 하다가 점차 고구려인으로 포용해 버립니다.

고구려는 어떤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특정한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고, 넓게 포용하는 나라였습니다. 단일 민족만을 강조하여 외국인을 배척해서는 결코 세상의 중심 국가가 될 수 없고, 나라를 키울 수도 없습니다.

고구려는 초기에 주변국을 통합해 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이치를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광개토대왕 등장 이후 고구려가 대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포용력 때문이었습니다. 고구려는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닌 여러 종족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나라였습니다.

나와 다르다거나 단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친구를 미워하고 따돌려서는 정말 큰 사람이 될 수 없답니다. 큰 사람이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조화롭게 살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소년한국 2004-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