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중국, 대제국의 부활을 꿈꾼다

대당제국(大唐帝國)의 부활인가. 중국이 보여주고 있는 엄청난 변화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안겨주고있다. ‘한국이 언제 추월당할 것인가’라는 우려는 이미 낡은 것이다.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 신주(神舟)5호는 이미 우리의 머리위를 날아 우주로 비상(飛翔)했다.

엄청난 속도의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어느새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유일한 경쟁자로 성장했다. 성당(盛唐)시대를 연상시키는 요즘 중국을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홍콩 워싱턴 뉴욕 현지에서 심층진단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 편집자


▲ 베이징 남동쪽 70km에 주둔하고 있는 인민해방군 196여단 병사들이 소총에 착검을 하고 있다. 인민해방군은 2002년의 경우 우리의 2배가 넘는 311억달러의 국방비를 쓰며 군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AP자료사진

“시안(西安)에는 중국의 과거가, 베이징(北京)에는 현재가, 상하이(上海)에는 미래가 있다”고 중국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상하이의 요즘 화두는 ‘창신(創新)’이다. 상하이 최고 번화가 난징루(南京路)의 상하이은행 앞 광장. “창신은 한 민족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영혼이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오는 2010년 상하이에서 개최되는 세계박람회를 성공시키기 위해 내건 구호다. “2010년 세박(世博)까지 앞으로 2337일”. 상하이 시청앞 전광판은 이미 6년뒤의 개막일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 전광판에도 ‘창신’이란 글자가 크게 걸려있다.

지금까지 상하이, 아니 전 중국에서 제일 높은 건물은 푸둥(浦東)의 진마오(金茂)빌딩이었다. 높이 420.5m에 88층으로, 건축 당시 세계3위였다. 말레이시아 쿠알라품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 미 시카고의 시어스 타워 다음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완공된 타이베이(臺北)의 101층짜리 국제금융센터가 1위로 올라서면서 4위로 밀렸다. 그러나 ‘창신’을 내건 상하이는 이미 진마오 빌딩 바로 뒤쪽에 104층과 107층짜리 건물 공사에 착수했다. 2010년 세계박람회 개막때는 세계 1,2위 건물을 동시에 보유한다는 계획이다.

높이 올라가려는 중국인들의 꿈은 그러나 지상 몇 백 m 에서 그치지 않는다. “꿈을 넘어서…, 당신의 자랑거리가 되겠어요(飛越夢想 爲 驕傲).” 경제 수도 상하이와 정치 수도 베이징(北京)을 비롯한 중국 대도시 거리 곳곳에는, 중국인들의 가슴을 한껏 부풀게해주는 그런 글귀가 걸려있다. 지난 10월15일 발사된 중국 최초의 유인우주선 ‘신주(神舟)5호’의 비행 성공을 축하하는 구호다. “중화 민족 천 년의 꿈이 이루어졌다”고도 한다. 중화 민족 천 년의 꿈이란 ‘항아(嫦娥)’의 전설이다. 불사약을 훔쳐 용을 타고 달나라로 날아갔다는 미녀의 전설이다. 중국 항공우주국은 중국 최초의 우주인 양리웨이(楊利偉)의 비행 성공 두 달만에 “달 탐색선 항아1호를 3년내에 발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인공위성 발사센터가 있는 주천(酒泉) 서쪽 600㎞의 둔황(敦煌) 벽화가 기록하고있는 항아의 전설이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무섭게 팽창하면서 블랙홀처럼 세계 경제를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 덕분이다. 중국 경제는 2003년 SARS와 이라크 전쟁의 발발에도 불구하고 8.6%의 GDP성장률을 보였다. “당초 두 사태의 충격으로 8.0%쯤으로 성장률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으나 빗나갔다.” 중국 경제발전을 총지휘하는 국무원 발전연구센터의 매크로경제연구부 루중위안(盧中原) 부장의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2002년 8.0%에 이어 다시 2003년 8.6%의 성장을 한 것으로 보아 중국 경제가 ‘새로운 상승기(新一路 上昇期)’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중국경제는 앞으로 3년간 8%이상의 고속성장을 계속할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루 부장은 그 첫째 이유로 중국인들의 소비패턴이 지금까지 의(衣)와 식(食), 생필품쪽에 집중돼오다가, 최근들어 점차 주택과 주방, 자동차, 이동전화, 컴퓨터등 IT산업제품쪽으로 중심이 옮겨가고있는 점을 들었다. 그는 국유기업의 투자비중이 최근 3년간 57%에서 52%로 점차 줄어들고, 민간투자가 32%에서 38%로 확대되고있는 점을 고속 성장의 두 번째 배경으로 들었다. 작년의 경우 도시화 진행율이 36%에서 40%로 높아진 점도 사스와 이라크전의 영향을 누르고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세번째 배경이 된 것같다고 분석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의 경제발전이 과거의 대당제국(大唐帝 ) 부활로 이어지는거 아닌가”라는 물음에 류젠차오(劉建超) 외교부 대변인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면서 “2050년에 가더라도 중국은 중등(中等) 발전국가의 수준에 이르지밖에 못할 것”이라고 겸손해 한다. “대당제국의 부활은 지나친 말이며, 중국은 강해지더라도 패권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요즘 중국이 전통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던 인도와도 화해하고, 동남아 여러나라 와는 전통적인 우호를 강화하며, 중-한-일 3국 관계에도 부드러운 얼굴을 보이고 있고, 카자흐 우즈벡 키르키즈 등 중앙아시아 5개국과도 잘 지내려 하는 등 주변국 모두와의 우호에 신경을 쓰는 목적이 보다 원대한 데 있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도 손을 내젓는다. “우리의 이웃나라들에 대한 정책의 기본이 목린(睦隣) 안린(安隣) 부린(富隣)일 뿐 미국을 의식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웃과 화목하고, 이웃을 안정시키며, 이웃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정책을 쓰는 것이 중국 외교의 기본 노선일뿐, 미국과 세력경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상하이 국제문제연구소 전략연구실의 샤리핑(夏立平) 주임(인민해방군 上校)의 말은 좀 다르다. 현상태에서 만약 타이완(臺灣) 문제 등으로 중국이 미국과 충돌할 경우에도 중국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미국이 중국을 공격할 경우 동원할 수 있는 것은 항모 6척, 전투기 500여대, 전략폭격기 50여대가 맥시멈일 것이다. 미사일은 최대 1000 발 정도 준비할 수 있겠지만 그 두 배인 2000 발을 퍼붓는다고 하더라도 중국대륙이 얼마나 부서지고 중국인들이 얼마나 죽겠느냐.” 하지만 중국이 워싱턴에 동풍(東風) 미사일 1 발만 성공적으로 날릴 경우 미국은 혼란에 빠질 거라는 것이다. 자기네 국민은 상하지 않고 전쟁을 하려는 미국을 어렵게 만들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은 이라크전 개전 이전에는 국력의 시계바늘이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으나, 이라크전 개전으로 그 시계는 오후 1시로 기울어졌다”고 말했다.

전 국방부장 장아이핑(張愛萍)과 왕다오한(王道涵)을 비롯 쟁쟁한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만드는 격월간 ‘전략과 관리’ 최근호는 중국의 군사전략 목표가 우주분야로 이동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2003년 제5호에 실린 ‘20세기 중국 군사현대화의 반성’은 “19세기에 중국은 바다를 소홀히 해 약소국으로 전락했으며, 20세기에 들어서야 바다로 나갔으나, 이미 선진 강대국들은 하늘로 올라갔다”며 군사전략 개발을 위한 우주분야 진출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가 이끄는 중국공산당 정치국원들은 지난 11월24일 대학교수들을 초빙, 15세기 이래 주요 국가들의 흥망사를 공부하는 집단학습의 기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후진타오는 “심각하게 변화하는 현재의 국제환경속에서 역사상 여러 국가들의 성공과 실패의 사례를 학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3년전인1990년 연말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도미노식 붕괴를 불안한 눈길로 쳐다보던 덩샤오핑(鄧小平)이 남긴 ‘도광양회( 光養晦·칼빛을 감추고 어둠속에 실력을 기르라)’라는 유훈에 따라 힘을 길러온 중국은 원숭이의 해인 올해에는 어떤 행보를 보일 것인가.

(조선일보 2003-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