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적은 '탈민족주의'

흔히 '쇼비니즘'이라고 불리는 '맹목적 민족주의(애국주의)'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세계 제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쇼비니즘에 근간한 자민족 우월주의였다. 특히 독일은 게르만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유태인 집단 학살이라는 극단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필자가 <오마이뉴스>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를 다루었을 때, 독자들로부터 받은 질책 가운데 몇 가지는 극단적 민족주의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우려였다. '극우파가 아닌가'라는 우려 섞인 의심은 이 문제가 극단적으로 발전하게 되면 쇼비니즘의 형태에 근접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민족과 밀접하게 관련된 문제이다. 동북공정을 시작한 원인은 여러 가지로 분석되는데, 이 가운데에는 지속되고 있는 티벳의 독립운동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1959년부터 촉발되기 시작한 이 운동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게 되었고, 이로 인해 중국은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 연합해서 만든 국가로서의 입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중국에 있는 55개의 소수민족 가운데 모국 내지 망명 정부를 가지고 있는 민족은 5곳으로, 몽고족(몽고)과 조선족(한국과북한)·하사크족(카자흐스탄)·티벳족(달라이라마 망명정부)·대만이 있다. 만약 티벳이 중국으로부터 완전하게 독립하게 되면, 이들 역시 독립을 요구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이 가운데 특히 문화적으로 지역적으로 한반도와 연결고리가 깊은 조선족이 독립을 요구할 경우, 티벳의 독립보다 더 큰 정치적 파장을 초래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중국의 와해로도 이행될 수 있는 무서운 도화선이다. 중국이 티벳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북공정은 이러한 가능성을 역사적 근거를 통해 미리 차단하고, 이후 조선족의 이탈을 방지하려는 속셈에서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동북공정은 기본적으로 민족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따라서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 역시 민족문제와 결부되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민족'의 문제는 특히 한국에서 예민한 문제이다. 한국은 다민족 국가가 아니다. 단일민족이 이룬 국가로, 여전히 '민족국가'의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은 곧 '같은 국가'로 인식될 만큼, 민족과 국가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남한과 북한의 통일에 대한 당위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며, 이 당위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이처럼 한국은 국가에 대한 당위를 '민족'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민족의 중요성 역시 매우 크다. 물론 이것이 조금만 논리적으로 더 이행되면, 쇼비니즘으로 이행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건전한 민족주의와 쇼비니즘은 다르다.

민족주의는 사람들의 자유가 뒷받침된 민족애의 확대이다. 이것은 '우리는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혈연과 발생지역, 그리고 역사에 대한 공통적 특징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한 자율적인 애정의 표시가 확대되어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타민족에 대한 시기와 배척의 감정이 들어 있지 않으며, 자민족 우월주의 역시 자긍심 이상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다. 이것은 '나를 포함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긍정이며, 우리의 삶에 대한 긍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민족주의를 쇼비니즘으로 비판하게 되면, 이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삶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이어진다.

지금 한국과 중국의 역사 전쟁은 '민족'을 중심으로 놓고 이루어지는 전쟁이다. 만약 여기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빠져있다면, 중국은 굳이 역사 왜곡을 시도할 이유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조선족의 이탈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면, 동북공정 역시 시도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조선족은 지역적으로 문화적으로 단일민족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한반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통일 이후의 조선족 이탈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민족개념을 약화시키면서 국가관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민족 개념은 발생지역과 혈연, 그리고 역사의 공유를 통해서 확보된다. 만약 여기에서 역사가 흐트러지면, 민족의 정체성 역시 흐트러진다. 중국이 역사 왜곡을 시도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민족의 끈끈한 접착성을 일부 부식시킴으로써 조선족이 한반도에 붙을 수 있는 가능성을 상쇄시키기 위한 것이다.

결국 이 역사 전쟁은 역사를 통해서 민족의 정통성과 고유성을 지켜 나가려는 쪽과, 국가 속에서 민족은 언제나 재편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국가 속에 포함된 민족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의 싸움인 것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민족적 정체성을 잃어버릴 경우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구심점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한국은 단일민족이 이룬 국가로서, 국가에 대한 중시와 애국의 당위는 여기에서 촉발된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상당히 높게 나타나고 있는 이유이며, 애국의 길이라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목숨을 버릴 정도의 실행력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이 흐트러지게 되면 한국은 그 국가 역시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지금 고구려사를 놓고 중국과 벌이고 있는 전쟁은 바로 이러한 전쟁이다. 혈연과 동일한 발생지역,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러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단일민족이 모여 만든 국가가 한국이다. 따라서 역사를 흔드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건전한 민족주의마저 '쇼비니즘'이라고 치부하여, '탈민족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단순히 '민족을 탈피하여 세계화를 지향'하자는 대승적 차원의 의미일 수도 있지만, 잘못 왜곡될 경우 이 전쟁의 정당성을 잃게 만들어 버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민족 연합체로서의 중국측 입장을 옹호하는 논거로 작용될 수도 있으며, 이 전쟁에 우리의 힘을 모아야 할 이유를 상실시키는 논거로 작용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민족의 자긍심과 역사를 잃어버리는 것으로 결과를 낳을 수 도 있으며, 한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외부의 적이 중국이라면, 내부의 적은 '탈민족주의'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나라가 침략을 받은 상태에서 '반전'의 구호를 부르짖는 것과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반전의 구호는 나라를 침략자들에게 내어놓는 논리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오마이뉴스 2003-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