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동북공정의 허실' 발표한 신형식 교수

"고구려 유민 130만명 옛땅에 그대로 남아"

“서기 668년 고구려가 멸망할 당시의 인구는 200만명 정도였습니다. 이 중 130만명이 옛 고구려 땅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논리적 허점을 파헤치는 국내 학계의 노력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9월 본격적 고구려 통사인 ‘고구려사’(이화여대출판부)를 출간했던 신형식(申瀅植)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이 논리적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 ‘인구’라고 말한다. 신 교수는 곧 출간될 역사학 전문지 ‘백산학보’(통권 67호)에 발표할 논문 ‘중국의 동북공정의 허실’에서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고구려가 중국 것’이라는 중국측의 논리는 크게 세 가지. 첫째, 고구려 민족은 한민족(韓民族)과는 무관한 중국 변강의 민족이라는 것. 둘째,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에도 옛 한사군의 관할 범위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 이 두 가지에 대해 국내 학계의 입장은 명백했다. 고구려를 세운 사람들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거주하던 예맥족(濊貊族)으로 한족(漢族)과는 무관하며, 두 번째 논리도 ‘현재 중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가 중국사’라는 자신들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체 모순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학계에선 세 번째 논리에 대해 다소 곤혹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구려 멸망 후 대다수의 유민은 한족(漢族)으로 흡수 융화됐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이는 이미 중국 학자 자오푸샹(趙福香)이 2000년 출간된 ‘고구려역사여문화(高句麗歷史與文化)’에 실린 ‘고구려멸국후민족유향(高句麗滅國後民族流向)’에서 제기한 논리였다. ‘멸망 당시 고구려의 인구는 70여만명이었는데 그중 대부분이 중원으로 강제로 옮겨져 중국인이 됐다’는 것.

하지만 신 교수는 “믿을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계산해 보면 전혀 다른 데이터가 나온다”고 중국측의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중국학자들이 얘기하는 ‘인구 70만’의 근거는 ‘고구려가 69만7000호’라는 ‘구당서(舊唐書)’의 기록인데, 이는 ‘1호당 5명’일 경우 인구는 70만×5=350만이므로 너무 많게 돼 자기들 마음대로 ‘1호=1인’으로 계산한 데서 나온 수치이다.

“하지만 당시 고구려의 영토는 한반도와 비슷한 넓이였고 ‘한서(漢書)’에 나오는 요동군의 인구가 27만2539명이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를 근거로 계산할 경우 7세기의 고구려 인구는 ‘1호당 4명’인 280만명 정도가 된다. 이것은 고구려에 복속돼 있던 말갈·숙신·거란 등 북방민족의 인구를 모두 합친 숫자로 봐야 한다. 그런데 전쟁에 희생된 12만명, 당나라로 강제이주된 42만명, 포로가 된 8만5000명, 신라에 귀순한 8만명 등을 모두 빼면 약 200만명이 남게 된다.

여기서 고구려의 통제하에 있던 북방민족이 이탈했는데, 이들의 인구는 아무리 많이 잡아야 70만명을 넘지 않는다고 신 교수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130만명은 어떻게 됐을까? “이들은 모두 고구려의 옛 땅에 그대로 남아 살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신라와 발해로 차츰 흡수됐습니다. ‘대부분의 유민이 중국으로 갔다’는 중국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게 되는 것이죠.”

백산학회 회장인 신 교수는 “사회과학원을 중심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중국과는 달리 우리는 제한된 연구단체에서 똑같은 내용을 반복적으로 발표하고 있다”며 “즉흥적인 반박보다는 정부 지원 아래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장기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3-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