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고구려 역사 왜곡

중국 20년 전 부터 ‘역사 비틀기’

고구려 역사 왜곡’이 사회적 관심사로 불거졌다.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사업을 통해 고구려사를 왜곡, 중국사로 편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고대사학회·한국고고학회 등 17개 학회가 지난 12월 9일 중국에 대해 ‘역사 왜곡 중단’을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12일 국회의원 25명이 ‘중국의 역사 왜곡 중단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데 이어, 13일 ‘고구려사 연구센터’를 설립해 정부 차원에서 고구려 연구를 지원키로 하면서 ‘한·중 역사전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고구려 역사 왜곡 논란’의 배경과 과정, 중국측 주장 및 대안을 살펴본다. <편집자>

▲ 고구려장군 양만춘이 당태종 50만 군대를 물리친 '역사의현장'안시성,역사 왜곡에 나선 중국은 한국인이 안시성을 찾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구려 장군의 모습(왼쪽)과 중국 장군의 모습(오른쪽)을 함께 담은 이 그래픽은디지털 복원 전문가 박진호씨가 전문가의 고증을 얻어 복원한 것이다

‘동북공정’이란 무엇인가

‘동북공정’의 원래 이름은 ‘동북변경지역의 역사와 상황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東北邊境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다. 중점 연구과제는 ▲한반도 정세 변화와 그것이 동북지역의 안정에 미칠 영향 ▲고조선·고구려·발해사 ▲동북지역 역사 ▲동북지역 민족사 ▲고대중국 영토문제 ▲발해유적 현황 ▲간도문제 등 한국사와 관련된 문제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표1>

▲ 발해를 당나라 영역으로 표기한 중국지도
이 프로젝트의 사업주체는 중국 정부. 국무원 산하 국책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이 연구책임을 맡고 있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일반 학회조직과 달리 ‘동북공정’엔 동북3성의 행정조직·공산당 조직·산하 연구기관·대학 등이 모두 포함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원 리저잉과 재정부장(재경부 장관)을 지낸 샹화이청이 고문을 맡고 있고, 공산당 중앙위원 왕뤄린이 연구팀장을, 헤이룽장·지린·랴오닝성의 부성장 및 부서기가 부팀장을 맡고 있다.

2002년 2월 28일 발족된 이 프로젝트의 총경비는 5년 간 24억원. 중국 재정부가 1000만위안(약 16억원), 동북3성이 375만위안(약 6억원), 사회과학원에서 125만위안(약 2억원)을 부담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연구비 전액이 지급되는 ‘국책사업’이다.

‘동북공정’ 취지문은 이 프로젝트에 관해 “학과·지역·분야를 초월, 국가의 장치구안(長治久安;장기적 통치·안정)을 목표로 삼는 대규모 사업”이라며 “국가통일·민족단결·변경안정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동북공정’은 또 “이 연구를 완성하기 위해 정치의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 이 사업이 ‘정치적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란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윤휘탁 동아대 연구교수는 ‘현대중국의 변강·민족의식과 동북공정’이란 논문에서 “동북공정은 한반도 정세변화가 (조선족 사회를 포함한) 중국 동북지역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려는 거대 사업”이라 파악한 뒤 “통일 이후 불거질 수 있는 한·중 국경 및 영토문제에 미리 대비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상황전개 및 중국 주장

한민족 고대사를 중국사의 일부분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왕청리·주궈천·웨이궈종 등 지린성 학자들이 시발이었다.

1984년 ‘발해간사’ ‘발해사고’ 등의 글을 발표한 이들은 “발해는 독립국가가 아니라 당나라의 지방세력이었다”며 “따라서 발해는 중국의 지방 봉건정권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주장에 따라, 이후 중국 역사지도에선 발해국의 영토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송기호 서울대 교수가 역사비평 2003 겨울호(65호)에 게재한 중국지도<사진1>는 ‘당나라의 영역으로 표기된 발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리뎬푸와 쑨위량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1989년 발표한 ‘고구려 간사’란 글에서 이들은 “고구려국은 예맥족이 세운 할거정권으로 중화민족사의 일부분”이라며 “이 정권이 발전함에 따라 한반도 역사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고 강변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와 한민족은 별개”라는 이 논리를 계승했다. “고구려 민족은 부여·옥저·예맥·숙신·선비·한족(漢族)이 융합해 형성됐다”며 “이들은 모두 전한(前漢)시대(BC 179~141) 동북 변경지역에서 활동한 민족이기 때문에 한국인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 한반도까지 들어와 표시된 중국 장성
그동안 중국에선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보는 학자라 해도, 427년 평양천도 이전까지만 중국사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이후의 역사는 한국사로 봐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여왔던 것이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벌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 역사”라는 소위 ‘다민족 통일국가론’이 제기되면서 “고구려사도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주장이 중국 학계의 주류를 이루기 시작한다. 동북공정 역시 이러한 주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고구려 후기, 활동무대의 중심(수도)이 현재의 한반도로 옮겨가긴 했지만, 그 지역 역시 한사군의 관할범위였기 때문에 고구려는 한사군의 범위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중국은 고구려와 수·당이 치른 전쟁 역시 “국제전이 아닌 내전”이라 주장하고 있다. “변방 소수민족 정권과 중앙의 통일정권 간에 빚어진 내부 갈등이며, 이것은 한족의 거주지였던 랴오둥 수복을 위한 패권싸움”이란 것이다.

1989~1994년에 걸쳐 랴오닝 학자 쑨진지가 발전시킨 이 논리는 “중국 지방정권이던 고구려인들은 대부분 한족(漢族)으로 흡수됐고, 따라서 한국인의 선조는 고구려인이 아닌 신라인”이란 주장으로 확대된다. “한국인의 선조인 신라인들이 북쪽으로 올라와 현재의 국경선이 이뤄졌으며 따라서 한국사의 범위는 한반도 남부 신라지역으로 한정된다”는 것이다.<사진2> 중국학계는 이런 논리를 앞세워 “한국인이 원래의 중국 영토를 점유한 것이지, 중국이 한국의 영토를 쳐들어간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북공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려는 고구려의 약칭 또는 이칭(易稱)이었다”며 “따라서 고구려 멸망 후 250년 후에 등장한 왕건의 고려와 고구려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중국측은 “왕씨 고려의 구성원은 대부분 신라인과 백제인이었다”며 “고구려와 고려를 혼동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고려를 세운 왕건 역시 낙랑군 한족의 후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기도 한다.

중국은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굴되는 고구려의 유물·유적은 모두 중국의 문물·고적”이란 주장을 편다. “따라서 한국인들이 만주지역을 고구려·발해의 고토로 인식하고 해당 유적지를 찾는 행위는 중화민족을 분열시키고 조선족을 이탈시키려는 반민족적 행동”이라며 군부대를 동원, 고구려 유적지 지안으로의 한국인 출입을 금지해버렸다. 여기엔 ‘만주수복’을 외쳤던 국내 일부 국수주의자들의 언행과 중국 내 소수민족인 조선족들의 한국행 러시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국내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북한 지역 주도권 쥐려는 처사”

중국측의 이같은 주장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북한이 신청한 한반도 이북의 고구려 고분군이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지 못한 것이었다.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ICOMOS)는 평가보고서를 통해 “북한측 고분 보존상태에 문제가 있다”며 “중국측 유적과 비교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송기호 서울대 교수는 이에 대해 “당시 보고서 작성 책임자가 중국학자였다고 한다”며 “이는 문화재 보존에서 중국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입증, 북한을 제치고 중국쪽 유적을 등록하려는 처사일 것”으로 분석했다. 송 교수는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목적은 신라이북 지역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을 도와 고구려 벽화고분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우리 역사에 대한 주도권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최광식 고려대 교수도 “북한이 유네스코에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간조선 2003-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