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史' 둘러싼 제2의 '나당전쟁' 이길수 있을까?

'막강한 화력의 정규군 VS 탄약도, 병력도 부족한 민병대'

중국이 정부 주도로 5년간 3조원의 사업비를 들여 '고구려'의 중국사 편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비해 이에 대응하는 한국측의 연구예산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구려사 방어'의 최전선에서 중국에 맞서고 있는 교육부 산하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양원택 연구실장은 "중국과의 문제는 학술적인 대응이 가장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고대사 특히 고구려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면서 특히 "내년 예산안에 고대사·상고사 연구비는 겨우 4억원이 책정돼 있으며 이마저도 국회 심의를 남겨둔 상태"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2001년 한일정상회담 당시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를 함께 풀어가기 위해 발족한 한시 기구다. 그러나 고구려사 문제가 불거진 이후 이 문제도 함께 다루고 있으며 현재 중국 교과서 26종을 포함한 44개국의 한국 역사 관련 내용을 분석 중이다.

▼고구려사는 이미 중국의 역사?▼

지난해 초 일본 교토 국립박물관을 찾은 '월간 신동아' 이정훈(현 주간동아) 기자는 박물관에 비치된 동북아시아 연표의 고구려사가 한국과 중국 역사 양쪽으로 분류돼 있고, 발해는 아예 중국사 쪽에 들어가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이 기자는 "일본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구려사를 한국과 중국의 공통된 역사로 알고 있었다"며 "연표가 그렇게 작성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10여개 세계 유명 사이트의 한국사 기술 부분에서 고구려가 누락된 사실이 알려져 네티즌 사이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중국이 5년간 200억위안(약 3조원)의 사업비를 들여 진행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는 중국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中國邊疆史地硏究中心.www.chinaborderland.com)이 지난 해 2월 확정해 출범한 대형 연구사업이다.

최근 공개된 '동북공정 프로젝트' 1차년도 연구목록에 따르면 고구려를 중심으로 고조선, 발해, 조선 등은 물론 현재 한국의 경제·사회상황 전반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국은 지난 2월에는 내년 6월 중국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총회에 '집안시와 환인시 일대 고구려 유물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집안시에는 국내성과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등 1만3000개 이상의 고구려 고분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환인시에는 오녀산성 등의 유적이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내년 총회에서는 중국이 의장국의 지위를 이용해 국내성 일대를 자기네 문화유산으로 등록 시킬 것"이라고 예상하고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북한이 '평양시 고구려 벽화 고분군'에 대해 세계문화유산 신청을 했으나 중국의 이의 제기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내년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고구려사를 놓고 남·북한과 중국이 처음으로 공식 대결을 벌인다는 점을 중시, 북한의 벽화고분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방침이다.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한 관계자는 "중국측의 유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적어도 북한측 유물도 함께 등록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으므로 우선 동시등록을 통해 논의의 기반을 만든 후 장기적으로 학술적 대응을 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동시등록은 "고구려가 중국사에 포함된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는 반발이 있을뿐더러 북한이 지난해 유네스코의 동시등록 권유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난항이 예상된다.

▼"이것은 제2의 나당전쟁"▼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국내 학계의 대응도 본격화 되고 있다.

한국고대사학회 등 한국사 관련 학회들은 오는 9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15일에는 '동북아시아 고대사 연구의 방향'을 주제로 학술 대회를 열기로 했다.

또 민족문화연구소는 고대사 연구자 양성 및 전문인력 확보를 위해 정신문화연구원에 '고대사 연구소'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송기호 서울대 교수는 최근 발행된 '역사비평' 겨울호(통권 6호)를 통해 현재 촉발되고 있는 고구려사 논쟁을 '제2의 나당전쟁'에 비유하면서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집어삼키려 하자 신라가 이에 대항해 나당전쟁을 벌였듯이, 이제 북한 땅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하며 신라계 국가만 우리에게 떼어주려고 하는 마당에 제2의 나당전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우리민족의 진정한 위대성은 중국에 흡수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데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에게 닥친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보다 북을 도와서 고구려 벽화고분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도 최근 언론 기고문을 통해 "부총리급이 원장인 중국 사회과학원 내의 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고구려사 편입 작업에 대해 우리 정부가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며 "한·중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일보 2003-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