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구려사 왜곡 움직임

고구려가 당나라 지방정권이라니…

중국 당국은 작년부터 소위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하여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 즉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고, 이와 관련된 국책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統一的多民族國家論)’을 그 이론적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학문적 목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직접적 계기는 2001년 북한이 유네스코(UNESCO)에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신청한 데 대한 대응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남북통일 후의 국경문제를 비롯한 영토문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 할 수 있다.

중국측은 지안(集安)시를 도읍으로 하던 시기의 고구려사는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파악하고, 평양을 도읍으로 하던 시기의 고구려사는 한국사의 일부라는 그들의 종래 주장에서 더 나아가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의 고구려까지 중국사의 일부로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고조선의 역사도 중국인에 의한 식민정권으로 파악하고, 발해사는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파악하여 모두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측의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한국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으며, 공간적으로 한강 이남의 지역만이 한국사의 활동공간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러한 인식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중국측의 사서인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을 보면 지은이 진수(陳壽)는 오환과 선비 및 동이를 다른 민족의 역사로 인식하고 서술하고 있다. 또한 부여·고구려·예·마한의 경우 제천대회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들 사회에서 하늘(天)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은 “제후는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없고, 오직 황제만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제후국이 아닌 독자적 정치체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고구려는 광개토왕릉비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진 독립국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부식(金富軾)이 올린 ‘삼국사기(三國史記)’ 표문을 보면 신라와 고구려 및 백제를 포함하여 삼국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고, 이들 삼국은 중국과 다른 나라라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만약 고구려가 한국사의 일부가 아니라면 우리는 삼국시대가 아니라 신라와 백제의 이국시대로 불러야 되는 것이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중국측의 주장에 대해 우리 정부는 현재 아무런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중국 당국의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왜곡하려는 작업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사건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역사왜곡 사건은 검인정 교과서 중에 하나인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왜곡은 부총리급이 원장인 국책기관 중국사회과학원 내의 연구소를 통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정부의 공식적 입장을 표명하고, 한·중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사의 올바른 정립을 위하여 고구려사의 연구와 교육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북한이 유네스코에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할 것이다.

한국고대사학회는 11월 2일 ‘중국의 고구려사왜곡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한국사 관련 학회들과 공동으로 학문적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다음달 9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중국의 고구려사왜곡에 대한 문제점을 밝히는 공개 세미나를 가질 예정이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하여 정부와 학계 및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많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고구려사가 한국사로서 올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광식·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조선일보 2003-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