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고조선의 역사는 우리 역사의 원형질적 존재이자 민족사 출발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되는 부분이다. 특히 단군신화로 상징되는 개국신화의 이해 문제와 고조선사의 개시 연대, 위치 문제는 현재까지도 논쟁의 중심축으로 남아있다. 또한 이 문제는 한국 북한 중국 일본학자들의 입장과 이해방식의 차이에 의해 동북아 고대사를 보는 관점 문제와 연결되어 현재까지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1980년대 이후 북한학계의 요동중심설의 소개와 재야사학자들에 의한 ‘환단고기’류의 인식이 대중화되면서 강화된 민족주의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고조선에 대한 관심은 일반 대중에게 확산되어 다양한 입론들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특히 1993년 북한학계의 단군릉 발굴 및 고조선 평양중심설의 제기는 과거 요동중심설을 고수하던 북한의 입장이 하루아침에 바뀌며 일대 논쟁을 야기했다. 그 후 10년여를 지나며 논쟁이 소강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이번에 간행된 송호정 교수의 저서는 새로운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이 책은 문헌자료 및 중국학계의 고고학적 성과를 면밀히 검토하여 기존 연구방법론상의 문제를 보완하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돋보인다. 또 이를 토대로 학계의 ‘뜨거운 감자’와 같은 쟁점에 대해 소신있는 견해를 피력하였다는 점에서 참신함과 열정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먼저 중국 동북지방에서 청동기문화가 개화하는 시기(기원전 8∼7세기)와 ‘관자(管子)’등 선진문헌에 고조선이 나타나는 시기를 연결시켜 고조선의 등장시점을 기원전 7∼6세기로 설정하였다. 따라서 단군조선과 단군신화 문제는 고조선의 국가권력이 형성된 이후 지배층이 만들어낸 신화 속의 역사라는 점에서 논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3일 북한 평양시 강동군 단군릉 앞에서 벌어진 개천절 행사. 한국교원대 송호정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우리 중고등학교 국정교과서조차 단군조선을 신화가 아니라 역사로 인정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또한 이른바 ‘기자조선’의 역사는 중국 연(燕)의 관할하에 있던 상(商)족 후예들의 국가였고 그 종족적 계통은 산융(山戎) 등 유목민족 계통으로 보았다. 결국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은 한(漢)나라 역사가들이 꾸며낸 이야기이고 요서지역에서 나온 ‘기후(箕侯)’이름이 쓰인 청동그릇은 산융 등 오랑캐 사회에서 상나라 유민들이 살았던 증거로 이해했다. 이를 통해 필자는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요하 서쪽의 초기 청동기문화가 기원전 2000년까지 연대가 올라가고 그것이 단군조선의 문화라는 주장은 허구라고 비판했다. 한편 요서지역 청동기문화와 대릉하 동쪽에서 요동지역에 분포하는 요령식 동검문화의 귀속집단에 대한 검토를 통해 남만주 일대에서 요령식 동검문화를 주도한 민족은 ‘산융’등 오랑캐 세력으로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학계가 동검의 발생지가 요동이며 요령식 동검의 분포지역이 모두 고조선영역이라고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자의적이고 단순한 역사인식이라고 비판하였다.

결국 저자는 단군 및 기자조선의 실체를 부정하고 요서지역과 고조선 영역이 서로 관계없음을 본서를 통해 과단성 있게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고조선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요동지역을 주목하여 대표적 표지유물로 요령식 동검이 아닌 고인돌과 미송리형 토기, 그리고 서북한 지역의 팽이형 토기문화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요동 중심의 미송리형 토기문화는 예맥족의 문화이고 서북한 지역의 팽이형토기 문화가 고조선의 중심 청동기문화라고 파악했다.

이 같은 저자의 인식은 현재 우리 학계의 고조선 중심지 이동론과 북한학계의 요동 및 평양지역 양중심지 입장과도 대별되는 평양지역중심론으로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저자는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얻은 자료를 충실히 활용해 논지 전개의 치밀성을 더했다. 다만 본인도 지적했듯이 중국 고고학계의 시각에 치우친 경향과 평양중심설로 대표되는 이병도 선생의 견해를 재정립하였다는 비판에 대한 앞으로의 대응이 궁금하다.

<조법종 우석대 사학과 교수>

(동아일보 2003-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