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과 기업

◆ ‘당위원회’의 역할

중국에서 최고경영자의 역할은 경영을 잘해서 이익을 남기는 것 외에도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사의 임직원들에게 집권 공산당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름이 알려진 대부분의 중국 기업들은 사내에 "당위원회"라는 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당위원회는 당을 대신해 기업을 감독하고 주요 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경영인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의 가르침이 도덕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사상적 중심이 서지 않으면 모든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판에 박힌 말로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냉철하다는 투자분석가들도 기업의 가치를 따질 때 당위원회에 관련된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요 상장회사에 당비서가 파견돼 있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고, 그들의 영향력이 이사회보다 절대로 작지 않다는 것 또한 오늘날 중국의 분명한 현실입니다.

◆ 10~20명 가량의 "비밀조직"

중국에서 일정한 규모로 성장한 어떤 회사가 보다 큰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싶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번영과 발전을 계속 추구하고 싶다면, 그 기업은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당과 모종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새로 탄생한 벤처형 소기업은 예외에 해당합니다. 이들 첨단회사들은 내부적인 당의 감독보다는 아이디어와 의욕이 중시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보통신(信息)과 관련된 첨단기업이라 하더라도 주식이 증시에 상장될 정도의 회사라면 거의 예외없이, 중국 공산당이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당위원회는 대개 10~20명 가량의 멤버로 구성돼 있습니다. ‘위원회’는 대부분 최고 경영진과 같은 ‘로열층’에 사무실을 갖고 경영진과 잦은 교류를 갖고 있지요. 각 회사의 입장에 따라 위원회의 역할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직간접적인 당의 개입이 투자가들 눈에는 보이지 않고, 따라서 규제·감독이 공개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조직의 구조상 주주를 배려하려는 이사들과 당에 대한 의무를 앞세우는 위원회 사이에는 항상 마찰의 소지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당위원회의 존재에 관해서는 부정적 시각과 긍정적 시각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 조직이 불필요한 절차를 만들어 결국 부패를 유발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글로벌 산업혁명(China and the Global Business Revolution)’ 이란 책으로 유명한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피터 놀란(Peter Nolan) 교수는 “명시돼 있는 구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당위원회간의 업무가 중첩되지 않는 것이 놀랍다”면서 “기업과 당 사이의 교류가 항상 빈번하기 때문에 항상 부패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게다가 당이 개입할 수 있는 이해의 폭은 매우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7월, 당 조직관리를 성공적으로 함으로써 중앙당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은 상하이의 한 사기업 간부가 "수상은 형식에 불과한 것" 이라며 "이 모든 것이 정치적인 쇼"라고 맹비난하며, 위원회의 해산을 요구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었습니다.

◆ 중국 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

중국 전체에 퍼져 있는 공산당원의 수는 약 6500만명. 이들은 엄청난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서 이들의 눈밖에 난다면 은행대출이 어려운 것은 물론, 인적 물적 교류로부터 소외돼, 회사의 발전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사실상 대부분의 상장회사는 정부 혹은 정부투자기관이 거대지분을 갖고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좋던 싫던 간에 당과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즈니스 영역에서 당의 역할을 중시하는 적극적 견해도 있습니다. 기업내 당조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 구조를 잘만 활용한다면 당이 비즈니스 발전에 대단히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당위원회가 기업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막에 관해서는 공개된 것이 많지 않습니다. 지난해 상하이 증권거래소에서 펴낸 상장기업 관련자료는 “상장사의 경우, 이사 임명이나 직원들의 봉급 결정 등 주요 사업결정의 99%가 내부적으로 당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행해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선전(深口) 증권거래소 후즈스 부소장은 지난번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꽤 있다”면서 “한 외국인 회사는 조직에서 채용한 당원들에 대해 매우 미덥잖은 태도를 보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당원의 필요성을 절감, 이들을 더 많이 채용하려 하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상장회사들은 대부분 이익의 극대화라는 경제적 측면과, 당위원회라는 정치적 측면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제약회사인 윈난바이야오(雲南白藥)의 당서기 치타이윈은 자신의 일에 대해 “한편으로는 이익의 증대를 꾀하고, 또 한편으로는 종업원 관리를 감독하는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경영진은 때때로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그들이 이유없이 어떤 직원을 해고했다면, 당위원회가 나서서 진상을 파악한다”고 말했습니다.

◆ 당과 기업은 공생관계

중국 최대의 맥주회사인 칭따오(靑島)맥주의 리루이롱 사장은 영국 언론과의 회견에서 “당위원회는 관리목표를 집행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회견에서 그는 “당, 다시말해 정부가 가장 큰 주주다. 당은 45%에 달하는 지분을 갖고있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익을 내서 그 이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해 주는 것이며, 이 경우 가장 큰 수혜자 역시 당”이라고 말했습니다.

최대 가전업체 하이얼의 경영자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장루이민은 지난 6월, 당조직과의 마찰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나는 내 손으로 직접 하이얼의 당 서기를 지명한다. 내가 뽑은 사람과 내가 마찰을 일으킬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었습니다.

장루이민은 사실 약간 예외적 사례로 봐야할 것입니다. 그는 하이얼사를 단 16년만에 중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다국적 기업으로 키워낸 유명인사입니다. 당으로부터 보통사람과 다른 특별 대접을 받고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런 장도 관할 지방, 관할 성, 그리고 중앙당 차원의 지원이 없었다면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견해에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경영에 있어서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을지 몰라도, 최소한 은행에 접근해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융통받는 데에서는 실패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결국 당위원회로 대표되는 중국 공산당과 중국 기업간의 관계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생관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당은 은행을 통해 자금을 대주고 대주주로 기능하며, 기업은 당을 위시한 대주주에 이익을 나눠주고, 그렇게 해서 정치적 부문과 경제적 부문이 ‘중국식’으로 묘하게 공생해 가는 것이 당과 기업간의 관계입니다.

캠브리지 대학의 피터 놀란 교수는 “기업이 자금을 어디서 끌어왔는가? 사업자와 은행은 어떤 관계인가? 하는 점을 따져본다면 그 질문의 핵심에 공산당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이야기처럼, 중국의 경제 시스템이 WTO 가입으로 “완전히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었다”고 봐야 할 것인가? 거기에 대한 대답은 “아직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 / 이범진 기자 200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