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고구려 사이에 '구려국' 존재"-北사학계

북한의 역사학계에서는 고조선 멸망 이후 '구려국'(句麗國)이 고구려 건국 이전까지 약 1천년간 한반도 북부지역과 지금의 중국 동북부 지방을 지배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민족의 고대사를 고조선-구려- 고구려로 파악하고 있는 이 학설은 북한의 역사학자 손영종이 최초로 제기한 것으로 최근 북한에서는 역사학계뿐 아니라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도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평양서 발간되는 대중잡지 천리마 최근호(2001,3)도 역사강좌를 통해 "단군에 의해 건국된 고조선과 함께 우리나라 고대사의 일익을 담당하고 민족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한 나라들 가운데는 `구려'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북한 역사학계 주장에 따르면 구려국은 정확하게는 고조선이 내부분열을 드러낸 기원전 14세기 경 독자적인 고대국가로 등장했다.

이후 구려국은 기원전 277년 고구려에 의해 멸망됐다는 것인데 천리마에 소개된 구려국의 고조선 승계설 근거와 국가형성 과정및 그 영역,그리고 정치 군사 산업제도 등을 보면 다음과 같다.

▲구려국의 고조선 승계설 근거 = 중국의 전한시기(기원전 206년~ 기원후 24년) 에는 고구려를 '구려'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고구려의 원래 국호가 '구려'인데서 연유한 것이다. 구려는 고조선의 '후국'(속국)으로 존재했는데 중국의 역사서인 '후한 서'에는 "구려가 본래 조선(고조선)땅이었다"고 기록돼 있으며 '제왕운기'에도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또 구려가 위치했던 지역에서 발굴된 고조선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도 구려국 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국가형성과정 = 구려는 고조선 내부에서 단군조선과 후조선사이의 교체과정이 진행되던 역사적 전환기를 이용하여 기원전 14세기 경 고조선의 '후국'(속국)지위에서 탈피하여 정치 경제 군사 외교적으로 독립적인 고대국가로 등장했다. 고대 중국역사를 전하는 '일주서'나 '상서'에는 기원전 11세기에 구려국이 중국의 고대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구려국 영역 = 오늘날의 중국 동북부 지역 랴오닝(遼寧)성(省)과 지린(吉林)성 일대 및 북한 자강도 지역이었고 중심지는 졸본이었다.

▲정치,군사및 산업 = 최고통치자는 '왕'이었고 중앙통치기구의 하나로 '제가협 의회' (諸家協議會)를 두었다.이 협의회는 '귀족민주주의적 합의기구'로 특권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왕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지방행정단위는 5부(연나부,적나부,관나부,순나부,계루부)로, 군대는 보병과 기병으로 편성돼 있었다. 군의 주력은 기병이었다.

철기와 청동기문화가 발달, 농기구와 공구 등이 생산됐고 중국의 여러지방과 무역을 했다. 농산물로는 조 기장 수수 콩 등이 주로 재배됐다.

한편 남한의 고고학계에서는 구려국이 고조선을 승게했다는 북한의 주장을 "실증자료가 없는 근거가 희박한 학설"이라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전미희 연구위원은 "북한 역사학계가 주장하는 구려국의 고조선 승계 주장은 근거자료가 희박해서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북한에서 이같은 학설을 제기한 것은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끌어올려 남한과의 역사적 정통성 확보 다툼에서 우위에 서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남한의 고고학계에서는 '구려국'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 위치는 고조선 멸망 이후 나타난 여러 열국(列國) 가운데 하나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