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어느 지역을 한족(漢族)들이 도대체 몇 년 동안이나 직접 통치를 했던가? 홍원탁 (서울대 교수) 한 무제(漢武帝)가 기원 전 108년에 고조선을 정복하고 난 후, 한족(漢族)들은 요동(遼東)이라 불리는 비옥한 요하(遼河) 유역에 이주해 와서 정착하기 시작했다. 지난 3000여 년의 기간 중 (BC 1,000-AD 2,000) 800여 년 내외에 걸쳐서 간헐적으로나마 한족 왕조가 직접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던 지역은 만주의 단지 일부분에 불과했다. 한족들이 정착했던 지역은 대부분 요하 유역의 충적지대와 요동반도의 고지대를 중심으로 하는 만주 서남부의 삼각형 모양의 지역에 국한되었었다. 이 지역은 도랑을 파고 제방을 쌓아 만든 장벽으로 둘러싸이게 되었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요새화 된 관문들도 설치되었다.
청조 초기에 만주의 서남지역을 가로질러 도랑을 파고 제방을 쌓기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수리를 하고 확장을 했다. 이 도랑과 제방은 산해관(山海關)에서 시작하여 심양(瀋陽) 북쪽의 요하를 건넌 다음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반도와 경계를 이루는 압록강 변에 이르렀다. 도랑과 제방으로 이루어진 이 방책은 한족의 거주가 허용된 만주지역의 한계를 표시한 것이다 도랑을 파고 제방에 버드나무를 심어 놓은 장벽이 수백 마일에 이르렀는데 이를 유조변(柳條邊)이라고 불렀다. 청조 때 유조변으로 둘러싸인 지역은 1437-42년 사이와 1479-81년 사이에 축조된 명조(明朝)의 방어벽(邊墻)으로 둘러싸인 지역보다 약간 넓었다. 명조의 방어벽은 몽골-선비(鮮卑)족과 여진(女眞)족의 침입으로부터 한족의 거주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었다 이 방어벽은 만주지역에서의 명나라의 국경선을 획정했었다.
청나라의 통치자들은 명나라를 정복하기 위하여 요동의 한족들 상당수를 한인팔기 (漢人八旗)의 형태로 동원하였다. 전 중국대륙을 정복하고 난 후, 청나라 통치자들은 많은 수의 한인팔기를 재분류하여 만주족과 동일하게 대접해 주었다. 그들 자신은 계속 만주어를 사용하면서, 정복된 한족들에게는 상당히 알타이어화된 요동의 중국어를 관화(官話)로 정하여 사용토록 하였다. 요동출신 한인팔기들이 사용했던 중국어가 만주족 지배층의 귀에 친근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3천 년간(BC 1,000–AD 2,000)을 돌아보면, 요동은 겨우 84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만 한족들에 의해 직접 통치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BC 108년에 무제(武帝)가 고조선을 정복한 이후의 한대 328년의 기간(108 BC-220 AD), 조조(曹操) 위(魏, 220-265)의 45년간, 그 뒤를 이른 서진(西晉, 265-316)의 51년간, 당(唐, 618-907)이 고구려를 정복한 668년부터 안록산의 난(755-57)이 일어날 때까지의 89년간, 명(1368-1644)나라 276년간,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의 51년(1949-2000) 간이 한족이 만주를 직접통치를 할 수 있었던 기간들의 상한을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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